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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나카긴 캡슐타워와 힐튼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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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4-24 23:33:52 수정 : 2022-04-24 23: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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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조립식 주거공간’ 노후화로 철거
시민들 아쉬움 속 일부 재활용 계획
韓 현대건축 걸작 힐튼도 철거 위기
이윤 창출·가치 보존 균형점 찾길

지난 12일, 일본 도쿄 긴자의 한 건물 주변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유명한 건축물이라 아쉬운 생각이 드네요. 외로워지기도 하고요.”

방송 인터뷰에 응한 60대 회사원은 ‘나카긴(中銀) 캡슐타워’의 철거가 이날 시작된 게 몹시 안타까운 듯 보였다. 나카긴 캡슐타워는 일본을 대표하는 건축가로 꼽히는 구로카와 기쇼(黑川紀章)가 1972년 설계했다. 10㎡ 정도 크기의 주거공간인 캡슐 140개를 13층으로 쌓아올린 조립식 건물이다. 고도성장을 구가하던 당시 일본에서는 교외에서 도심으로 출근하는 직장인들이 크게 늘어 출퇴근 정체가 사회문제로 떠오를 지경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 건물은 ‘도심의 세컨드하우스’로 동경의 대상이 됐다. 일본 ‘메타볼리즘(Metabolism·건물도 유기적으로 변화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는 건축사조)’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하지만 건축 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노후화가 꽤 진행돼 철거 결정이 내려졌다. 철거 현장을 찾은 이들의 안타까움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지난 8일 서울시청 앞 도시건축전시관에 건축 전문가들이 모여 심포지엄을 열었다고 한다. 서울 남산 기슭에 40년 가까이 자리 잡고 있던 힐튼호텔의 앞날을 토론하기 위한 자리였다. 지난해 12월 힐튼호텔을 인수한 부동산펀드 운용사가 힐튼호텔을 헐고 2027년까지 오피스, 호텔 복합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하자 “한국 현대건축의 아이콘이 사라지게 되었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설계자인 김종성은 서구의 선진 건축을 한국에 소개한 인물이다. 그의 역작으로 꼽히는 힐튼호텔은 “수준 높은 디테일과 완성도 면에서 다시 재현하기 어려운 공간”이란 평가를 받는다.

한국과 일본에서 같은 시기에 비슷한 안타까움을 겪고,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건 이런 사례가 적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별한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 경영난, 노후화, 개발 압력 등을 이유로 철거 판정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말이다. 인도의 아메다바드경영대학원 기숙사, 미국의 펜실베이니아역사 등이 있고, 국내에서는 군산시민문화회관, 농촌진흥청도서관, 공간 사옥 등을 들 수 있다.

당장은 사라지게 그냥 둘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해당 건축물의 철거 여부에 대한 판단으로 한정되는 게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당대의 기억과 가치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로 연결되는 것이라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이럴 때 건축물의 특별함에 눈길이 쏠리며 보존론이 거세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능하다면야 더할 나위 없겠으나 그렇지 않아서 고민은 깊어진다. 부식이 곳곳에서 확인돼 본연의 기능을 잃어가는 나카긴 캡슐타워를 그대로 두는 것이 최선일까. 이익 창출을 위해 세워졌지만 이제는 “층고가 낮아 호텔 외에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어려운” 힐튼호텔을 보존하라는 것은 타당한가.

쉽지는 않지만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나카긴 캡슐타워는 건물을 이루는 캡슐 일부를 분리해 미술관에 기부하고 수장시설 등으로 재활용할 계획이다. 힐튼호텔 설계자인 김종성은 심포지엄에서 “건물의 기능과 용도는 바뀌게 마련이다. 객실을 줄이고 기존의 아트리움은 보존했으면 한다”며 “이윤도 창출하고 건축문화도 보존하는 윈윈 전략을 찾기 바란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이런 논의들이 우리가 향유하는 공간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해본다. 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두드러진 요소인지라 건축물에 유독 눈길이 가지만 그것 말고라도 공간을 채우는 수많은 것들이 있다. 하다못해 길가의 쓰레기통, 때만 되면 갈아엎는 것처럼 보이는 보도블록도 그중 하나다. 모든 것에 그럴 수야 없겠으나 진심과 성의를 다한 결과물로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들이 앞으로 더욱 많아지는 걸 상상해 본다. 모든 사람들의 생활 근거인 공간이 더 아름답고, 풍요로워질 것이란 건 당연하지 않은가. 잘 알고 있었든, 그러지 못했든 나카긴 캡슐타워와 힐튼호텔이 수십 년간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두 건축물의 철거를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이유다.


강구열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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