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 대학 선배가 손목에 붕대를 칭칭 감고 학교에 온 적이 있었다. 박사 논문을 준비 중이던 그 선배는 심사본 5부를 만들기 위해 밤새 논문을 손으로 직접 베끼다 손목 인대에 손상이 왔다고 말했다. 밤새 힘든 작업을 했을 것을 생각하니 안타까웠지만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컴퓨터, 복사기가 없어 지금처럼 쉽게 문서를 작성하고 고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컴퓨터를 통해 글을 읽고 쓰는 지금은 이런 일들이 너무나 쉽다. 글을 쓰다 틀린 곳이 나오면 바로 고치면 된다. 좋은 구절이 있으면 자판의 키를 이용해 복사를 할 수 있고 필요한 부분을 오려서 붙일 수도 있다. 마우스와 컴퓨터 자판만 있으면 어디서나 문서 작업을 쉽고 편하게 할 수가 있다. 반면에 그러다 보니 문서를 어떻게 작업했는지, 읽고 쓴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쉽게 잊어버리게 된다. 컴퓨터 화면을 통해 글은 읽지만 필자의 생각이나 주장은 느끼기가 어렵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독서를 지난 세기의 위대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가 프루스트도 독서를 소통 중에서도 가장 ‘비옥한 소통’이라고 불렀다. 글을 읽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독한 행위지만 그 안에 가장 풍요롭고 비옥한 대화와 소통이 있다는 역설이 있다. 우리는 글을 읽으면서 타인의 생각을 엿보고 가 보지 못한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는 한다. 그리고 저자와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마키아벨리는 저자와 대화하기 위해 책을 읽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저자에 맞춰 옷을 갈아입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부끄럼 없이 그들과 대화를 하면 그들도 친절히 대답을 해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베냐민은 대상을 깊이 이해하기 위해 ‘베껴 쓰기’, 즉 ‘필사’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빠르게 읽는 것을 ‘비행기 여행’이라고 불렀고, 천천히 필사하면서 읽는 것을 ‘도보 여행’이라고 불렀다. 비행기를 타고 가면 도로 위의 풍경이나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보지 못하지만 도보 여행은 걸으면서 주위 풍경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다. 필사를 하면 텍스트를 찬찬히 보면서 저자의 생각과 사상을 엿보고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베냐민은 베껴 쓰는 사람만이 그 저자의 영혼에 호령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시간이 허락된다면 여러분도 다른 사람의 글을 밤새워 음미하면서, 찬찬히 한번 베껴 보기를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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