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역·강남구청역서 타려면
엘베 3번 갈아타야 승강장 도착
논현역은 출구 한곳만 엘베 있어
대로 무단 횡단해야만 탑승 가능
서울지역 엘베 설치율 94%라지만
“지하철역에 억지 설치…동선 꼬여”

“명동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니요?”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오영희(75)씨는 귀를 의심했다. 꼭 듣고 싶은 강연이 있어 30일 오전 명동성당을 들렀다가 4호선 명동역을 찾은 참이었다. 오씨는 거동이 불편해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닌다. 지인의 차를 얻어 타고 명동까진 올 수 있었지만, 명동역에서 대중교통으론 귀가할 수 없었다. 명동역 엘리베이터는 올해 완공을 목표로 공사 중이었다.
오씨는 명동역 직전 역인 충무로역으로 향했다. 행인 중 하나가 “충무로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있다”고 귀띔해줬기 때문이다. 하필 이날 정오부터 비까지 내렸다. 오씨는 우산도 없이 한참을 헤맨 끝에 7번 출구 옆에 있는 엘리베이터를 겨우 발견했다. 충무로역 지상에 설치된 유일한 엘리베이터다.
하지만 안도하기엔 일렀다. 엘리베이터가 너무 좁았다. 전동 휠체어 1대가 간신히 들어갈 정도였다. 앞서 탄 사람의 발을 휠체어 바퀴로 밟을 뻔한 오씨는 결국 혼자 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겨우 충무로역 지하 1층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지하 1층에서 오씨는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개찰구를 통과한 뒤에는 다시 엘리베이터를 갈아타고 지하 3층 승강장에 도착했다. 넓은 역사 안에서 헤맨 시간까지 합치면 오씨가 충무로역 입구에서 오이도행 열차에 몸을 싣기까지 20분 가까이 걸렸다.
이날 오씨는 충무로역에서 승강장을 찾아 헤매던 중 우연히 기자와 만나 이 같은 얘기를 털어놓았다. 오씨 사례는 설치율 수치만으로는 측정할 수 없는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지난 27일 “이미 94% (엘리베이터가) 설치됐고 3년 뒤에 100% 설치될 것으로 약속이 완료된 이동권 문제”라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단순 설치 여부만을 집계하는 설치율과 별개로, 충무로역처럼 이동 경로가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한 역사가 상당수다.

7호선 강남구청역도 교통약자의 접근성이 매우 낮은 편이다. 강남구청역에는 엘리베이터가 총 4대가 설치돼 있다. 교차로를 따라 네 방향으로 위치한 1∼4번 출구 인근에 1대씩 운영 중이다.
하지만 이 중 7호선 승강장으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는 단 1대뿐이다. 1∼3호기는 지하 1층까지만 운행하기 때문에 다시 4호기로 갈아타야 한다. 4호기를 타더라도 지하 2층으로 간 뒤 개찰구를 통과해 또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야 한다. 이날 오전 기자가 직접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승강장까지 가본 결과 성인 남성의 보통 걸음으로 3분 넘게 걸렸다.
같은 7호선인 논현역의 경우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역 서쪽에 있는 8번 출구에만 있다. 문제는 논현역 동쪽에서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논현역 사거리에는 횡단보도가 남북으로만 존재한다. 3∼6번과 같이 동쪽에 있는 출구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선 대로를 무단으로 가로질러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충무로역과 강남구청역은 철도 동호인들 사이에서 ‘개념 환승’으로 꼽히는 대표적인 역사다. ‘개념 환승’은 환승 구간이 합리적으로 설계돼 최소한의 이동만으로 다른 노선으로 환승 가능한 지하철역을 일컫는 표현이다. 비장애인들에게 개념 환승역으로 꼽히지만, 장애인들에겐 ‘지옥 환승’인 셈이다.
우정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조직국장은 “환승이 가능한 지하철 역사에 유난히 그런 곳이 많다”고 말했다. 1∼8호선 역사 중 대다수가 ‘배리어프리’(barrier-free·사회적 약자의 생활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물리적인 장애물을 제거한다는 개념)에 대한 고려가 없던 1970∼1990년대에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어 “이미 만들어진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를 억지로 설치하기 시작하니 동선이 꼬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 국장은 “부지를 추가로 매입해야 하거나 토목적인 고려를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의지의 문제라고 본다”며 “9호선을 지을 때도 비슷한 이유로 말이 많았는데 결국 건설을 완료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단순히 지하철 타자고 시위하는 게 아니다. 이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니고, 교육받지 못하기 때문에 노동에서 배제된다”며 “집 밖으로 나와 돌아다닐 수 있는 것 자체가 기본권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