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은행의 구로다 하루히코 총재는 엔화 약세가 경제 전반에 이득이 된다는 기존의 견해를 재확인했다. 수입에 의존하는 자원부족 국가인 일본은 이익보다 손해가 막대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를 일축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엔화 약세에 가속도가 붙어 엔화가 1990년 이후 최악의 붕괴 사태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엔화 약세가 중국을 자극해 2015년식 위안화 평가절하 사태가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 구로다 총재 "엔화 약세는 일본 경제에 좋다"
구로다 일본은행 총재는 25일 의회에 출석해 "일반적으로 엔화 약세가 일본 경제에 긍정적이라는 견해에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일본 경제의 구조적 변화 덕분에 엔화 약세의 이익은 수출 확대가 아니라 일본기업들의 해외 수익 증가에서 나온다라고 그는 설명했다.
이번주 엔화는 2년 만에 최대 낙폭을 그리고 있다. 수입물가 상승과 초저금리 정책 때문이다. 이날 1달러는 121.84엔으로 움직이며 전날 122엔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엔화가 전날 기록한 6년 만에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최근 수입물가 상승은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따른 것이지 엔화 약세에 따른 것이 아니라고 구로다 총재는 지적했다. 다음달 소비자 물가가 일본은행 목표 2%에 근접해 오를 수 있지만 당장 통화 완화정책을 철회할 계획은 없다고 그는 말했다. 인플레이션이 임금, 일자리, 기업 수익이 꾸준히 오르는 현상과 동반해 상승해야 완화를 걷어 들일 수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구로다 총재는 "비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지 않고 이는 일본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라며 개인의 실질 소득과 수입 의존적 기업들의 이익이 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비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은 물가목표의 지속적 달성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예상했다.
같은 날 스즈키 수니치 재무장관은 최근 엔화 약세를 포함한 환율 움직임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계속 예의 주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환율 안정성이 중요하고 급격한 변동성 바람직하지 않다"며 과도한 엔화 약세에 대해 구두로 경고했다.
◇엔저 급가속…1990년 이후 최악 붕괴 경고
시장에서는 엔화가 1990년 이후 최악의 붕괴에 직면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됐다. 급격한 엔화 약세가 중국을 자극해 2015년 세계 금융시장을 뒤흔든 위안화 평가절하 사태를 재촉발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25일 블룸버그에 따르면 소시에테제네랄(SG)의 앨버트 에드워즈 전략가는 외환트레이더들이 이를 악물고 엔화를 팔아치우고 있다고 말했다. 달러/엔 환율(엔화 가치와 반대)이 1990년 이후 최고인 150엔선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그는 예상했다. 엔화값이 20% 가까이 떨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엔은 올들어 6% 떨어져 선진국 통화 가운데 최악이다.

에드워즈는 요 몇 년 새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매우 낮아 지루함을 느끼던 트레이더들이 최근 엔화값 급락세를 절호의 이익 실현 기회로 여기고 있다고 전했다.
◇미일 금리차 +우크라 사태…중국 자극할 수도
미국과 일본의 통화정책이 극명하게 갈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면서 엔화는 더 크게 미끄러졌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엔화의 안전자산 위상을 흔들며 엔 수요를 끌어 내렸다. 원유 순유입국인 일본의 취약성 때문이다.
엔화 약세가 중국을 자극할 위험도 있다. 통화 약세는 해당국의 수출 경쟁력을 높이는 요인이 된다. 에드워즈는 엔화 약세가 중국 위안화 등 역내 다른 화폐의 평가절하를 자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원화의 급락세도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에드워즈는 특히 2013~2015년 엔화가 가파른 약세를 보이면서 아시아지역 경쟁 화폐들도 약세로 기울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2015년 위안화 평가절하 사태를 촉발했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웠던 당시의 평가절하 사태는 위안화 투매로 이어져 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를 공황에 빠뜨렸다. 안 그래도 중국 인민은행은 최근 경기부양 기조 아래 위안화 약세를 유도하고 있는데, 엔화의 가파른 약세는 위안화를 고평가돼 보이게 할 수 있다고 에드워즈는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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