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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의인문정원] 타인을 환대함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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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3-18 22:52:08 수정 : 2022-03-18 22:52:07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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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타인’
낯섦의 문턱 낮추고 포용을

낯선 사람은 손님, 새로 이사 온 이웃, 이방인, 난민, 여행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의 바깥을 떠도는 외부 존재를 구성하는 성분은 낯섦, 알 수 없음, 다수성이다. 타인은 우리에게 경계심과 호기심을 촉발시킨다. 이것은 타인이 무슨 생각을 품고, 내게 무슨 행위를 할지 모른다는 점 때문이다. 나의 바깥에 타인이 넘치도록 많다는 점도 우리 안의 두려움을 자극하는 한 요소다. 타인은 이성을 통한 예측 불가능한 세계 바깥에서 불쑥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우리는 타인을 모르거나, 안다고 해도 그 앎은 제한적이다. 모호함이란 외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타인을 대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불안과 두려움을 느낀다.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선언한 것은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다. 내 실존의 가능성을 앗아가고 나를 자기의 지배 아래 두려는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한에서, 내 실존을 통제하고 자유를 빼앗는 존재라는 한에서 ‘타인은 지옥이다’란 말은 옳다. 타인은 내가 누리는 세계의 안녕과 질서를 깨트리고, 혼란과 불확실성 속에 빠뜨릴지도 모를 존재다. 우리가 낯선 사람의 모호함을 포용할 힘과 의지를 잃을 때 그 사람은 우리에게 타인으로 발명된다. 내 삶을 침식하고 망가뜨릴 수 있는 타인으로 범람하는 세계란 얼마나 끔찍한가!

장석주 시인

나는 소년 시절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그 당시 어린 가슴을 채운 불안과 두려움은 모래알처럼 많은 타자의 집단에서 혼자 외따로 떨어졌다는 강렬한 인식에서 비롯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이름을 모르고 내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르며, 나를 무관심으로 대하는 존재가 그토록 많다는 게 놀라웠다. ‘아, 세상은 넓고 낯선 사람은 이토록 많구나!’라는 낯선 인식과 고립감, 불안과 호기심이 혼재된 감정 속에서 낯선 사람의 세상 속으로 내 실존의 첫걸음을 뗐던 것이다.

타인을 향한 혐오와 적의의 뿌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타인을 의심하고 통제한다. 타인의 낯섦이 일으키는 과잉의 공포심으로 우리는 타인을 불신하고, 우리의 세계 바깥으로 밀어내는 것이다. 타인과 만나는 일은 늘 위험을 잠재한 낯섦과의 조우다. 윌 버킹엄이 쓴 낯선 만남들에 대한 숙고를 담은 ‘타인이라는 가능성’이란 책에선 “모든 새로움과의 만남에는 호기심과 두려움, 필로제니아와 제노포비아, 환대와 적의가 복잡하게 얽혀” 있음을 지적한다.

우리가 잊은 것은 내가 타인의 타인이라는 사실이다. 당신이라는 거울에 비친 나, 그게 타인이다. 나는 너다. 나와 너는 서로의 거울에 비친 자기를 보며 놀란다. 내가 타인을 두려워한다면 타인도 나를 두려워한다. 타인과 나 사이를 가르는 ‘문턱’은 그 두려움이 만든다. ‘문턱’이란 이쪽과 저쪽을 잇는 통과지대이자 관계의 복잡성을 품은 경계 공간이다. 윌 버킹엄에 따르면 고대 로마인은 야누스를 “가능성과 위험이 들끓는 곳”인 ‘문턱’을 관장하는 신으로 받아들인다. “야누스가 가정집의 문, 도시의 관문, 서로 다른 공동체 사이의 접경지대를 관장”하는 ‘문턱’을 넘으려는 낯선 사람은 반드시 ‘문턱 넘기의 의례’를 거쳐야만 했다.

우리 안에 도사린 타인의 낯섦에 대한 거부감과 그것이 만드는 두려움은 학습된 것일지도 모른다. 낯선 자를 조심하라! 우리는 선사시대 이래로 타인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심을 품는 문화적 인습에 젖은 채 살아 왔다. 하지만 실존이란 타인의 세계에 나를 투신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타인은 우리가 겪으며 살아야 할 환경이자 세계의 전부다. 타인을 부정하는 것은 실존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배고픈 길고양이가 우리에게 다가와 제 몸을 부비고 야옹거릴 때 그에게 기꺼이 먹이와 잠자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타인을 향해 ‘안녕’ 하고 인사를 하며, 그를 환대해야 한다. 환대는 낯선 존재들과 더 많이 접속하고 평화적 관계를 만드는 방식이고, “타인은 지옥이다”라는 한계를 뛰어넘는 일이다. 인간은 사회에서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다. 따라서 타인에게 관용을 베풀고, 그들을 환대하는 일은 생명공동체 안에 속한 인류의 아름답고 숭고한 의무다. 뿐만 아니라 부서지고 깨어진 세계를 잇고 복원하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장석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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