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국 런던 북쪽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의 카를 마르크스 무덤 바로 옆자리는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 차지다. ‘에릭 홉스봄/역사가/1917-2012’라는 단출한 석 줄 짜리 묘비명의 주인이지만 ‘인생이 곧 20세기 역사’라는 평가가 남을 정도로 서구 현대 지성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현실정치, 사회문제에도 많이 참여했던 위대한 지성이다. 일생을 공산주의자로 산 그가 95세 나이로 죽었을 때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영국 지성세계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다. 말년에 그는 영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역사가였으며, 좌파뿐 아니라 우파에서도 지지를 받지는 못하더라도 인정받았고, 진정한 국가적 및 세계적 명성을 누리는 소수의 역사가 중 한 명”이라고 기록했다.
인류 격변의 19세기를 다룬 3부작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와 그 후 20세기를 다룬 ‘극단의 시대’로 불멸의 명성을 쌓은 이 역사가의 일생을 돋아보는 평전이 국내 출간됐다. 자신도 영국 학술원 회원으로 저명한 역사가로서 대선배인 홉스봄을 존경하면서도 어려워했다는 리처드 J. 에번스가 저자다. 3개 대륙 17개 문서고를 조사하여 찾아낸 홉스봄의 방대한 저술 자료를 바탕으로 이 전기를 완성했다. 홉스봄의 성장, 내면의 변화, 인간적인 면모 등 사적인 측면을 풍부하게 재구성했다.
1917년 이집트에서 폴란드계 유대인 혈통으로 태어나 10대 초반에 고아가 된 홉스봄은 베를린에서 대공황의 위력과 정치권의 변덕스러운 대응을 목격했다. 시대 흐름을 따라 공산당원이 되어 나치즘에 저항했다. 그로 인해 목숨이 위험해지자 런던으로 이주한 뒤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했다. 홉스봄은 세상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자신의 경험에 의지하여 역사적 과정에 대한 이해를 확장했다. 혁명기의 쿠바를 방문해 체 게바라의 통역사로 활약하기도 했다. 1980∼1990년대에 그의 저술은 영국 정계와 신노동당 운동의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평생 마르크스주의에 충성하면서도 공산주의의 현실에 눈감지 않았고, 그 때문에 줄곧 영국 공산당의 의심을 샀다. 사후에 공개된 영국 정부의 홉스봄 관련 파일을 통해 그가 50년이 넘도록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80년대 많을 때는 2만5000파운드 상당에 달했다는 수입까지 낱낱이 보여줄 정도로 홉스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평전에는 해외 출장이 잦았던 그의 서울 방문기도 짤막하게 소개됐다. 1987년 우연히 서울 거리에서 출판사 초대로 방한한 홉스봄을 만난 결정학자 앨런 매카이는 당시 조우를 이렇게 기록했다. “그는 출판사들의 초대를 받아 방문한 참이었어요. 출판사들이 그의 책을 해적 출판했는데도 말이죠. 에릭은 서울에 대해 만약 부하린(옛 소련 급격한 공업화에 반대한 스탈린의 정적)의 정책이 실행되었다면 소련이 이런 모습일 것이라고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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