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영(사진)이 재심 변호사의 길을 걷게 된 배경인 ‘수원 10대 소녀 살인사건’을 언급했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수원 10대 소녀 살인사건의 전말이 밝혀졌다.
2007년 5월 14일 수원의 남자고등학교 화단에서 10대 여학생이 사망한 채 발견된다. 여학생의 시신은 폭행을 당한 듯 온몸에 멍이 있었고 얼굴 또한 심하게 부어있었다. 그런데 여학생이 입고 있던 옷은 헤지고 때가 묻어 있었고 운동화 밑창도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이에 경찰은 여학생을 가출한 노숙인으로 의심했고, 탐문 수사 끝에 정씨와 강씨가 2만원을 훔치기 위해 여학생을 폭행했다는 증언을 얻어 두 사람을 구속했다.
두 사람은 여학생이 2만원을 훔쳤다고 생각해 40분 동안 때렸다고 말했으나, 이후 여학생을 살해한 이들이 따로 있다는 첩보가 접수됐다. 범행현장에 정씨와 강씨 말고 가출 청소년 5명이 더 있었다는 것. 검찰은 이 5명의 가출청소년을 구속했고 학생들은 “2만원을 빼앗기 위해 그런 것”이라고 동일한 내용의 진술을 했다. 그렇게 정씨와 강씨는 공범, 5명의 남학생들이 주범이 됐다.
가출 청소년들을 돌봐 온 상담소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소식에 충격을 받았고 선생님들은 아이들을 만나 사실이 맞는지 물었다. 그러나 아이들은 부인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난 시점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5명 중 한 명인 A군이 “선생님은 믿어 달라”며 “죽은 여학생을 본 적도 없다”고 범행을 부인하는 편지를 쓴 것.
편지를 받은 선생님은 박준영 변호사를 찾아갔다. 재심 전문으로 유명해지기 전 박준영 변호사는 섬마을 출신 고졸이라 큰 로펌에 들어가지 못하고 수원에 겨우 작은 사무실을 낸 상태였다.
당시 국선변호사였던 박준영은 “선생님들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으나 이내 선생님들의 정성에 감동했다. 선생님들은 직접 사건 기록을 분석했고, 매일 퇴근 후 변호사 사무실로 출근해 피고인 7명의 진술을 날짜별로 분류 분석하는 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시신이 발견된 학교에 대한 7명의 진술이 엇갈린 점을 발견했다. 또한 사건 현장 검증 영상에서도 아이들은 학교에서 갈림길이 나오자 멈춰 섰고, 수사관이 시신이 있던 곳의 방향을 가리켜 주자 그대로 움직였다.
박준영 변호사와 상담소 선생님들은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썼고, 결국 드러난 진실은 뜻밖이었다. 소녀의 시신이 발견되기 이틀 전, 수원역 노숙인 폭행 사건이 있었다. 이들 7명이 돈 2만원 때문에 실랑이를 빚은 여성은 죽은 소녀가 아닌 다른 여자 노숙인이었던 것.
결국 두 가지 사건이 섞이게 된 것이다. 녹취록 분석 결과, 조사 당시 한 가출 청소년은 수원에 있지 않았음에도 경찰과 검찰은 믿지 않았다. 살인과 상해치사 중 하나로 밀고 가자 마지못해 상해치사를 선택해 거짓 자백을 한 것이었다. 이에 정씨와 5명의 아이들은 모두 자백을 번복했다. 그러자 정씨에게는 위증죄가 추가됐고 박준영은 무료로 재심을 진행했다.
이후 강씨까지 자백을 번복해 2009년 1월 피고인 전원 무죄를 받았다. 검사는 대법원 상고했지만 2010년 7월 대법원 최종 판결에서 무죄가 나왔다.
박준영 변호사는 “제가 자본의 논리를 대변하는 변호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사건을 시작으로 재심 변호의 길을 걷게 됐다”고 회상했다. 당시 용의자였다가 무죄를 받은 A씨는 “지금 저는 결혼도 했고 아이도 있다”는 근황을 전해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
한편 ‘수원 10대 소녀 살인사건’의 진범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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