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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지는 독일의 위기감… “우크라에서 베를린 멀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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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3-01 07:00:00 수정 : 2022-03-01 09:4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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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푸틴의 ‘좋았던 시절’ 영영 오지 않는다
깨어난 전사 본능? 가시화하는 독일의 재무장
“안전한 나라는 없다”… 냉전 시절로 돌아가나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가 지난 2월15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언론에 회담 결과를 설명하는 푸틴 대통령의 말을 동시통역기로 들으며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다. 모스크바=EPA연합뉴스

“지난해 12월 총리에 취임한 ‘신출내기’ 숄츠가 불과 24시간 만에 독일 외교정책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영국 BBC방송이 독일 올라프 숄츠 정부의 대(對)러시아 강경정책에 놀라움을 표시하며 내놓은 평가다. BBC는 그간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 중 가장 러시아에 호의적이었던 독일이 지난 24일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 직후 태도가 싸늘하게 식은 것을 도로 위 자동차의 ‘유턴’에 비유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미치광이 같은 행태가 결국 ‘잠재적 우군’ 독일마저 적으로 돌려놓았다는 게 BBC의 분석이다.

 

◆메르켈·푸틴의 ‘좋았던 시절’ 영영 오지 않는다

 

BBC는 27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발(發)로 인터넷판에 보도한 ‘푸틴의 전쟁이 독일의 극적 유턴을 자극했다(Putin’s war prompts dramatic German U-turn)’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러시아 제재에 적극 동참하기로 한 독일 정부의 결정을 “전후 외교정책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라고 규정했다. 여기서 ‘전후’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를 뜻한다. 히틀러의 나치 독일이 일으킨 2차대전에 대한 반성의 뜻으로 독일은 공격적인 외교정책이나 강력한 군대 건설을 사실상 포기해왔다.

 

독일은 특히 러시아에 유독 밀착하는 태도를 보여왔다. 2차대전 당시 독일군에 목숨을 잃은 러시아인 등 소련인이 무려 2700만명에 이른다는 점, 그럼에도 소련이 고르바초프 시절인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및 동서독 통일을 적극 지지해준 점 등을 감안해서다. 이와 관련해 BBC는 “많은 독일인은 러시아, 그리고 러시아 문화에 애정을 갖고 있다”며 “그래서 독일 여론지도자들은 러시아의 견해를 가급적 이해하려는 전통을 이어왔다”고 평가했다.

 

영국 BBC가 인터넷판에 보도한 독일의 대(對)러시아 정책 변화 관련 기사. 첨부된 사진은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을 배경으로 시민들이 반(反)러시아 및 반전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 온라인 캡처

앙겔라 메르켈 전 총리가 가장 대표적이다. 냉전 시절 동독에서 성장한 메르켈은 러시아어가 유창했다. 푸틴과 정상회담을 할 때에도 러시아어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별 문제가 없어 통역을 안 둘 정도였다. 푸틴은 메르켈을 유럽 최고의 파트너이자 유럽연합(EU)의 진정한 리더로 여겨 극진히 예우했다. 메르켈은 미국의 거센 압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독일을 잇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2’ 건설을 기어이 관철시켰다.

 

◆깨어난 전사 본능? 현실화하는 독일의 재무장

 

하지만 푸틴이 내린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 결정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숄츠 총리는 메르켈이 미국과 격하게 싸워가며 겨우 지켜낸 노르트스트림2 가동을 깨끗이 포기했다. ‘전쟁 중인 나라로 인명살상용 장비를 보내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에 고성능 무기를 제공키로 했다. 러시아군 탱크 파괴를 위한 대전차 무기 1000기, 러시아 군용기 격추를 위한 지대공미사일 ‘스팅어’ 500기 등이 그것이다.

 

블라미디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2월15일 모스크바에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을 한 뒤 언론에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모스크바=EPA연합뉴스

독일 자체의 무장도 대폭 강화키로 했다. 숄츠 내각은 당장 독일군을 위해 1130억달러(약 136조원)의 국방예산을 추가로 투입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메르켈 시절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 이상으로 늘려달라”는 미국의 거듭된 요구에 부정적 태도로 일관했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들 정도다.

 

BBC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전이었다면 대다수 독일인은 이런 군사적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침공은 독일 정부와 유권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며 “독일인들은 침공을 (러시아가 아닌) ‘푸틴의 전쟁’이라고 부른다”고 덧붙였다. 푸틴의 잔혹한 태도에 독일인들의 마음이 싹 돌아섰다는 얘기다.

 

러시아군의 로켓 공격으로 파괴된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아파트 건물. 키예프=AP연합뉴스

◆“안전한 나라는 없다”… 냉전 시절로 돌아가나

 

일각에선 독일이 단순히 우크라이나에 ‘동정심’을 가져서가 아니라 푸틴, 그리고 강력한 러시아 군대에 제대로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그간 독일은 안보와 관련해 막연히 ‘러시아와 국경을 접한 동유럽 및 북유럽의 나토 동맹국들 방어에 도움을 주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가져왔는데, 이번에 보니 그게 아님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의 동맹국이자 이번에 우크라이나 침공에서도 뜻을 같이한 벨라루스에선 “이제 ‘서부’를 강화해야 한다”며 “러시아제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우리나라에 배치하면 거기에 장착된 레이더를 통해 독일 베를린까지 감시할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벨라루스의 서부란 곧 독일을 의미한다. 과거 냉전 시절 공산주의 동독과 접한 서독이 자유 진영의 최선봉이었던 것처럼 이제 독일이 러시아 및 그 세력권 국가와 직접 국경을 맞대는 최악의 상황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BBC는 “독일인들은 갑자기 우크라이나가 베를린과 매우 가깝다고 느끼기 시작했다”며 “이제 독일 정부는 다른 나토 동맹국들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 즉 군비에 더 많은 돈을 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설명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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