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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맹 없는 설움”… 미국이 우크라이나 파병 주저하는 이유는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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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26 06:00:00 수정 : 2022-02-26 10:2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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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거대한 폭발이 발생하고 있다. 트위터 캡쳐

충격과 공포, 불안과 분노가 24일 우크라이나를 가득 채웠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4일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작전’을 승인했다. 전차를 앞세운 러시아군은 수도 키예프를 포함한 우크라이나 주요 지역을 공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정면충돌 국면으로 확대되면서,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포함한 서방 측은 러시아의 침공을 강하게 비판하며 대러시아 제재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미사일과 공격헬기, 전투기를 비롯한 첨단 무기와 고도로 훈련된 병력에 전차, 보병전투차를 더한 대대전투단(BTG)을 앞세운 러시아군의 공격에도 미국과 서방 세계는 직접적인 군사 개입은 자제하고 있다. 냉전 이후 거듭된 미국의 전쟁이 남긴 ‘악몽’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법적 구속력 없는 ‘우방’ 한계…‘출구전략’ 문제도

 

러시아의 침공이 시작되자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규탄하면서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다. 서방 국가들이 강력한 제재를 단행하고, 무기를 공급해달라고 요청했다.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의 지하철 역에 러시아군의 공격으로부터 피신한 시민들이 누워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는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계획이 없는 상태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안에는 북대서양조약기구 군대가 없으며 우크라이나에 파병할 계획은 없다”며 “동유럽 회원국 주둔군을 계속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을 규탄하며 추가 제재 계획을 밝혔으나 군사 옵션은 언급하지 않았다. 

 

미국은 다자 또는 양자 관계의 안보 동맹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과는 북대서양조약기구, 일본과 한국은 상호방위조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와는 강제력을 지닌 법적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북대서양조약 제5조에서 회원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전체 가입국들을 겨냥한 공격으로 간주해 공동 대응한다는 ‘집단안보’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

 

‘미군이 개입할 것’이라는 우려를 의식하게 하는 인계철선(폭탄과 연결되어 적이 건드리면 폭발하도록 설치한 가느다란 철사)이 전혀 없는 셈이다.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집을 잃은 주민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서 있다. AP연합뉴스

법적 강제력이 없다고 해도 미국과 서방 측의 태도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하자 우크라이나 정부군을 교육하려고 파견한 소규모 병력을 철수시켰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지상군 파병에 대해 “테이블에 없다”며 군사 옵션을 배제했다.  이를 두고 미국이 군사옵션 여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유지하기만 해도 러시아의 침공에 대한 억지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이같은 태도는 미국과 러시아의 충돌에 따른 위험과 미군의 현실, 출구전략 설정의 어려움에 원인이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핵강국이다. 미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견제에 필요하지만, 우크라이나를 두고 러시아와 충돌하면 핵무기 사용을 동반한 대전쟁으로 번질 수 있다. 

 

25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이 추락한 군용기 잔해를 살피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군은 냉전 종식 이후 세계 각지의 분쟁에 개입하고 전쟁을 치렀다. 특히 이라크 전쟁과 아프간 전쟁에서 미군은 수천명이 전사하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모했다. 

 

종전 직후 어떤 시점에 철군할 것인가를 다룰 ‘출구전략’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채 전쟁을 벌인 대가였다. 

 

출구전략을 갖추지 않은 채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 매달렸던 대가는 컸다.

 

미 브라운대 왓슨 연구소가 지난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9·11 이후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에 참가했던 미군 가운데 3만177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 같은 기간 전사자 7057명보다 4배 많다. 그만큼 휴유증이 심각했다.

 

국제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아프간에서 철군한 것도 거듭되는 희생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 컸다.

 

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 북동부 지역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겨우 빠져나온 미국으로서는 명확한 출구전략 없이 우크라이나에 군사옵션을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소총과 급조폭발물로 무장한 탈레반보다 훨씬 고도로 훈련되고 첨단 장비도 갖춘 러시아군과의 충돌은 미군을 ‘우크라이나 수렁’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11일 미국 NBC방송 인터뷰에서 “미국과 러시아가 서로 총을 쏘기 시작하면 세계대전”이라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믿을 수 있는 것은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 직후 양성해온 군대와 국민 항전 의지 뿐인 셈이다.

 

러시아의 침공을 앞둔 20일 우크라이나 민간인이 소총 사격술을 익히고 있다. AP연합뉴스

◆국가간 합의도 언제든 휴지 조각…‘자주국방’ 필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국내에서는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는 주장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군사동맹을 확보하지 못한 채 러시아의 침공에 직면한 우크라이나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동맹 없는 나라의 설움’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우크라이나는 법적 구속력이 강한 방위조약을 맺지 못했다.

 

대신 1994년 우크라이나가 구소련이 남긴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는 대신 미국과 영국,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영토 보전과 정치적 독립을 약속한 ‘부다페스트 안전 보장 양해각서’가 있다. 2014년과 2015년 돈바스 지역 무력충돌 해소를 위해 체결된 ‘민스크 협정’도 있었다.

 

하지만 이같은 각서와 협정은 힘의 논리에 의해 얼마든지 휴지조각이 될 수 있다. 푸틴 대통령은 21일 연설에서 “우크라이나는 과거부터 러시아와 한 몸이었고, 오늘날의 러시아는 구소련이 만든 나라”라며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정하다시피 했다.

 

한국은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한국이 무력공격의 위협을 받으면 미국은 원조를 하도록 되어 있다. 이에 따라 주한미군 2만8500명은 한국에 대한 미국의 방위공약을 상징하면서 강력한 억제력을 발휘한다.

 

우크라이나 동부 루한스크주의 발전소가 공격을 받아 불타고 있다. AP 통신

하지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파견했던 병력을 철수한 것처럼 주한미군 현상 유지 여부나 유사시 증원전력 파견은 미국의 의지에 달려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가간 정치 관계가 군사력으로 결정되는 현상이 강해질 수 있다는 우려와 더불어 미국의 안전보장 약속이 얼마나 믿을만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독자적인 안보태세 강화의 필요성을 높인다. 실제로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한 폴란드는 군 병력을 현재의 두 배인 30만명으로 늘릴 계획이며, 라트비아도 미국에서 무기를 구매하려 하고 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동방의 핵 대국’을 자처하는 북한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응할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 미사일방어체계를 계속 발전시켜 북한이 한반도 정세를 군사력으로 흔들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넓은 지역을 방어할 수 있는 기동력을 갖춘 기계화부대, 전시 체제를 뒷받침할 동원전력 강화, 국민의 단결을 이끌어낼 정치적 리더십 등도 시급한 과제다. 

 

과거에는 동맹과 자주국방이 양립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많았다. 미국에 안보를 의존하는 것과 독자적인 안보태세 이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틀째인 25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수도 키예프 시내에서 러시아군의 진군에 대비해 전투 태세를 갖추고 있다. AP 연합뉴스

이제는 다르다. 자체적인 군사력과 동맹 체제를 함께 발전시키지 않으면, 언제든 무력에 의한 현상 변경 시도에 직면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자신을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나라가 어떤 역경을 겪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우린 홀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 누가 우리와 함께 러시아에 맞서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던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한탄을 잊지 말아야 할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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