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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의마음치유] 처방의 불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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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24 23:30:47 수정 : 2022-02-24 23: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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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황금률은 없어
자기방식으로 행동하고 깨닫는 수밖에

나치 치하의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건너가 자유프랑스군에 참여해 싸워야 할지, 오로지 아들에게만 의지하고 살아가는 어머니를 위해 집에 머물러 있는 게 옳은지 고민했던 프랑스의 한 청년이 사르트르에게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스스로는 결론 내리지 못했던 것이다. 전쟁을 옹호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라를 위해 싸워야 할 것 같다. 하지만 그러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고향에서 혼자 늙어가는 어머니는 어떻게 될까? 고국을 위해 몸 바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닌가?

사르트르는 대답했다. “당신은 자유요, 선택하시오.”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에서 그는 이 사례를 두고 ‘처방의 불가능성’이라고 명명했다. 이처럼 비교 불가능한 가치 사이에서 선택을 중재할 수 있는 윤리적 원칙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사르트르는 말한다.

선택한 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예측할 수 없다. 행동해보는 것 외에는 어떤 선택이 옳은지 미리 알아낼 방도가 없다. 멘토나 권위자, 혹은 전문가에게 묻는 것은 결과가 두렵고 후회하게 될까봐 회피하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결행하지 않은 채 혼자서 이리저리 머리만 굴리고 있는 것도 부질없긴 매한가지다.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 진정으로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만 휩싸여 활동하기를 주저하는 것도 유사한 사례다.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고 사는 것도 문제지만 질문에만 매달리는 것도 문제다. 성찰하지 않는 것도 삶이 무의미해지는 이유지만, 너무 많이 생각한 탓에 신경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뭔가 대단한 것을 사유만으로 찾아보겠다고 행동 없이 자기 마음속으로만 파고드는 것 자체가 무력감에 빠지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20대 후반의 청년이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져서 아무것도 하기 싫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진단이 뭐냐? 그 진단의 원인이 뭐냐? 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 때문 아니냐? 뇌에서 세로토닌이 안 나와서 그런 거냐? 치료는 어떻게 해줄 거냐?”며 뜨겁게 달궈진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공부도, 일도, 아니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서 햇빛 보기도 싫다는 게 단지 마음의 병 때문이라고만 봐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라고 답했다. 실망한 눈빛으로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고 다시 물었다.

“우선 밤새도록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 하는 것을 멈추고, 제때 자고 해 뜨면 일어나서 밥 챙겨 먹고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 걸어라”고 했더니 그는 눈살을 찌푸리며 질문하기를 멈췄다.

사실, 삶은 무의미하다. 아니 무의미하지 않다는 걸 완벽하게 증명해낼 방도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삶이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도 없다. 어느 정도 의미가 있긴 하지만 상당 부분은 무의미하다. 무엇보다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삶을 의미 있게 만드는 보편적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프로이트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황금률은 없다. 모든 이는 각자 어떤 특수한 방식으로 구원받을 수 있는지를 스스로 알아내야 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의미 있게 행동하면 그렇게 되고 무의미하게 행동하면 무의미해지는 게 삶이다. 우리가 제대로 살고 있는지, 그래서 잘 살았다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지는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행동하고 겪어보고 직접 깨닫는 수밖에 없다.


김병수 정신건강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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