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윤리적·인종차별 행위… 코로나19 억제 노력 훼손”
日 정부에 백신정보 유출… 日의 백신외교 지원 의혹도
미·영 등 국제사회 “충격적… 의혹 신속 조사·해소”요구
세계보건기구(WHO)의 일본인 최고위급 간부가 직원에 대한 인종차별 발언과 일본 정부에 백신 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조사를 받는 것이 확인돼 국제적 파문이 일고 있다.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29일(현지 시간) 열린 집행이사회에서 일본 출신의 가사이 다케시(葛西健·57)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장이 인종차별 발언과 백신 관련 정보를 일본 정부에 유출했다는 내부 고발이 접수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테드로스 사무총장은 “아직 할 말이 없다”면서도 “고발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인종차별·日에 백신 정보유출 혐의
AP통신에 따르면 WHO 전·현직 직원들은 가사이 사무국장이 비윤리적(unethical), 인종차별적(racist), 모욕적(abusive) 행동을 해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억제하려는 WHO의 노력을 약화시켰다며 지난해 10월 고발했다. 전·현직 직원들은 이달 중순에는 34개 WHO 이사국에도 고발 내용을 이메일로 전파했다. 직원들은 이메일에서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의 상황을 ‘체계적 괴롭힘 문화(a culture of systemic bullying)’가 상존하는 ‘해악적 분위기(toxic atmosphere)’로 묘사했다.
AP는 “입수한 녹음에 따르면 가사이 국장이 직원들의 국적을 근거로 경멸적 언사(derogatory remarks)를 했음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가 있는 WHO의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은 필리핀 마닐라에 있다.
내부 고발에는 또 가사이 사무국장이 백신에 관한 정보를 정기적으로 일본 정부에 제공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가사이 사무국장이 제공한 백신 관련 정보는 일본의 백신 외교에 활용됐다는 의혹을 받는다.

◆일본 정부 곤혹…국제사회 주시
일본의 자랑이던 가사이 사무국장의 비위 혐의가 불거지자 일본 정부는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특히 가사이 사무국장이 일본 정부에 백신 정보를 유출했다는 혐의가 사실로 확인될 경우 상당한 외교적 파장이 예상된다.
일본 정부는 가사이 사무국장의 정보 제공을 부인하고 있다. 마쓰모토 고이치(松本 好一朗) 내각 부공보관 겸 국제공보실장은 AP통신에 “일본 정부가 우리의 백신 제공과 관련한 민감한 정보를 부적절하게 받았다는 것은 진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밧세바 크록커 제네바주재 미국대사는 인종차별과 위법행위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며 “우리는 WHO 지도부가 이런 의혹을 신속하고 직접 해결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사이먼 맨리 제네바주재 영국대사도 “WHO에는 차별이 있을 곳이 없다”며 “영국 정부는 WHO가 모든 위법 혐의를 강력히 조사하고 피해자를 지원할 것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日 대표 보건행정가 추락 위기
가사이 사무국장은 일본의 대표적 보건위생 행정가다. 일본 게이오(慶應)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은 가사이 사무국장은 이와테(岩手)현 보건소와 후생성(현 후생노동성)을 거쳐 2000년 7월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에 감염증대책 의무관으로 근무하면서 WHO와 인연을 맺었다. 이어 후생노동성 국제과장보좌, 미야자키(宮崎)현 복지보건부차장을 거쳐 2006년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국 감염증대책과장에 취임해 WHO 베트남대표, 사무국 차장 겸 사업총괄부장을 지냈다. 2018년 10월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장 선거에서 당선해 2019년 2월부터 국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은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37개국을 담당하고 있으며 사무국장은 이 지역 톱이다.
일본 정부는 2018년 4월 당시 가사이 WHO 서태평양지역 사무국 차장을 사무국장 선거 후보로 추천하면서 “가사이씨는 보건의료분야에 있어서 광범위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며 “2014년 차장 취임 이래 걸출한 능력을 발휘해 회원국으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 서태평양지역 사무국장에 걸맞은 후보”라며 적극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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