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기적의 치료제’ 킴리아
4억6000만원 약값 엄두도 못 내
긴 싸움 끝 어제 급여 적정성 인정
연합회 “건보 절실 중증질환 많아
희귀·난치질환 보험 적용 넓혀야”
의협도 “치매조기진단 등 급여화”

“우리 아이 같은 환자는 얼마 안 돼 신경 쓰지 않았던 걸까요?”
이보연(40)씨는 지난해 6월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앓던 아들(당시 12세)을 잃었다. 아이의 죽음이 더욱 황망했던 것은 ‘기적의 치료제’라 불리는 약이 있었지만 써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외국 제약사가 개발한 ‘킴리아’는 단 1회 투약으로도 말기 백혈병 환자 10명 중 8명이 장기 생존할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치료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4억6000만원이나 되는 약값이었다. 이씨는 아들을 살리기 위해 은행 대출은 물론 제2·3금융권을 찾았고 결국 집까지 팔았다. 하지만 치료를 목전에 둔 아들은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 세상을 떠났다. “만일 건강보험이 적용돼 조금 더 빨리 약을 쓸 수 있었다면….” 가슴에 아들을 묻은 뒤 매일 수시로 떠올리는 생각이다.
이후 이씨는 ‘생명과 직결된 신약이 건보에 신속하게 등재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 달라’며 국가인권위원회에 보건복지부 장관을 상대로 진정을 내고, 약값 인하를 요구하는 1인시위를 벌였다. 더는 아들과 같은 아이가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결국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13일 약제급여평가위원회에서 킴리아에 대해 건보 급여 적정성을 인정했다. 아이가 세상을 떠난 지 7개월 만이었다.
힘겨운 싸움을 벌인 이씨에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탈모 치료약 건보 적용’ 공약은 상처로 남았다. 이씨는 “지금도 치료비를 충당하지 못해 집을 팔거나, 팔 집조차 없는 이들은 그저 건보 적용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라며 “‘표가 되는’ 공약도 필요하지만, 당장 돈 때문에 죽어가는 환자들도 아우르는 의료정책을 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근 이 후보가 탈모 치료약 건보 적용 공약을 발표해 논란이 된 가운데 건보 적용을 기다리는 희귀·난치병 환자들이 “사람을 살리는 약부터 적용해 달라”고 호소했다. 생명·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의료에 적용한다는 우선순위를 지켜 달라는 것이다.
이 후보 측에 따르면 탈모 치료약에 건보를 적용하게 되면 연간 700억∼800억원 정도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 희귀·난치성질환 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생명을 위협받는 희귀질환자들의 치료접근권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탈모 치료약 급여화가 논의되는 것만으로도 환자와 가족들은 통탄을 금하기 어렵다”며 “건보 적용이 절실한 다른 중증질환이 많은 상황에서 탈모 치료약 급여화 논의는 건보 급여 우선순위 측면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2011∼2020년 시판된 희귀의약품 127개 중 보험에 등재된 것은 56%(71개)에 불과하다”며 “희귀·난치질환에 대한 보험 적용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에서도 필수적인 의료에 건보 적용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증이나 희귀 질환 중 여전히 비급여 항목이 많은 상황에서 건보재정을 고려해 우선순위를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치매 조기진단을 위한 아밀로이드 뇌양전자단층촬영(PET), 조산을 예측할 수 있는 양수 내 MMP-8 정성검사 등을 우선 급여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건보의 목적은 생명과 건강에 밀접하게 관련된 부상과 질병의 치료를 보장하는 것인데, 노화와 유전으로 인한 탈모는 건보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탈모 치료약에 건보가 적용되면 필수의료를 필요로 하는 수많은 환자가 재정적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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