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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잃은 부모의 고통 시간 흘러도 여전
자신만의 신화 만들어 삶의 버팀목으로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겠어요.” 갑작스러운 사고로 스물네 살에 불과한 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어머니를 지난 일년 동안 상담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슬픔의 무게를 떨쳐내지 못한 채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조차 치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로 일하다 보면 가족을 잃고 우울의 늪에 잠겨 버린 이들을 자주 볼 수밖에 없다. 그중에서도 자녀 잃은 부모의 고통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잦아들지 않았다.

“괴로워도 견디며 당신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들려도 실제론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오히려 “그저 하루하루 참고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라며 삶의 허무함만 다시 느끼게 할 뿐이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고통에 익숙해질 뿐 슬픔은 계속될 테니까.

“나도 따라 죽고 싶다”라는 절규를 들을 땐 내 말문도 막혀 버린다. 혹시나 위험한 행동을 하지 않도록 당부해야겠다 싶어 북받치는 감정이 가라앉은 후에야 비로소 몇 마디 전하게 된다.

“자기 목숨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한 사람의 생명은 단순히 그 사람만의 것은 아니에요. 우리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준 부모님 것이기도 하고, 가족의 것이기도 해요. 나를 좋아해주는 친구 것이기도 하고요. 당신의 생명은 이제 저의 것이기도 합니다. 만약 당신이 죽는다면 당신을 알고 있는 나도 슬픔에 빠지고 말 테니까요.” 나의 이런 대답이 얼마나 그녀에게 도움이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이 이야기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대학을 갓 졸업한 딸이 암에 걸려 죽은 뒤에 우울증에 빠져버린 어머니를 상담했던 적이 있다. 그녀 역시 오랫동안 마음의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딸이 떠나고 난 후 4년이 지나고 나서야 간신히 웃음을 되찾았다. 그때 그 어머니는 내게 이런 말을 했었다. “우리 딸은 천사가 되어서 지금도 항상 내 옆에 있어요.”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이런 말을 하는 어머니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었다. 적어도 내겐 그렇게 느껴졌다. 딸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한 어머니가 만들어낸 환상쯤으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로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니 ‘이 세상이 무작위로 던져대는 절망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 살아가려면 우리에겐 자신만 아는 신화가 필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어릴 적 나를 키워주신 외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저 먼 우주 어디선가 반짝이는 별이 되어 나를 계속 내려다보고 계실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어야 마음이 조금 덜 아팠다. 그 뒤로 나는 “우리 인간은 죽으면 우주에 새로운 별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나이가 오십이 된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누군가 나에게 “말도 안 되는 소리로 자신을 속이고 있는 것 아니냐”라고 비웃어도 개의치 않는다. 언젠가 내가 죽더라도 ‘저 새까만 밤하늘에 별이 되어 딸이 있는 곳을 비출 거야”라는 생각을 품고 지금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너무나 쉽게 부서지고 마는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도 벗어날 수 없는 시련을 겪을 때마다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신화를 마음속에 하나씩 만들며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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