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림 개인전… 갤러리일호, 12∼18일

코발트블루의 작가 김유림이 이번에는 가상여행을 제안한다.
육아를 하면서 제한되어버린 행동반경이 TV나 각종 온라인 매체 속 여행에 대한 동경을 유발했다. 영상으로나마 반복 재생해 볼 수 있는 과거 여행지의 낯선 아름다움이 그의 회화로 되살아난다. ‘가상여행’이라는 문패는 진짜가 아닌 가상과 진짜 여행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아이러니를 뜻한다.
파란색은 아이러니한 색이다. 우울과 외로움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고, 차가운 느낌을 안기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심신이 편안해지는 따뜻함을 지녔다. 상실감을 느낄 때 찾게 되는데, 정작 마주하면 마음 한켠에서부터 무언가 채워지는 치유의 기능도 한다.
작가는 항상 파란색이 주는 에너지에 관해서, 자연 혹은 여행지의 공간을 빌어 이야기한다. 파란색을 긍정적인 고독감과 연결시켜, 그것과 아름다움의 상관관계에 대해 고찰한다. 혼자 떠난 여행에서 긍정의 고독을 포집하곤 하지만 여의치 않을 땐 영화 속 아이슬란드의 풍경에서 이미지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번에는 그가 즐겨보는 TV프로그램 ‘트레블러’, ‘비긴어게인’, ‘스트리트 푸드파이터에서 몇몇 장면을 가져왔다. 과거 유럽여행 때 찍었던 사진들을 컴퓨터에서 꺼내오기도 했다.
해질녘 낮과 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간을 프랑스에선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 한다. 영어의 ‘매직 아우어’다. 작가는 그 시간에 파랗게 변하는 하늘을 하나의 거대한 파란 구멍이라 생각했다. 한 없이 빨려 들어갈 듯 시선을 빼앗기고 마는, 마치 블랙홀 같은 그 색채에 매료되었던 순간들을 캔버스 가득 풀어놓는다. 김유림은 이를 통해 청춘의 한 때를 머물던 유럽으로 함께 추억여행을 떠나자고 제안한다.
과거에 내가 존재했던 공간이지만 지금은 없어졌다거나 내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공간들에 대한 그리움을 듬뿍 담았다. 기억은 있는데 더 이상 그 곳에 없는 나에 대한 이미지들을 찬찬히 들려준다.
작업은 영상 혹은 사진 이미지를 다시 그림으로 재현시켜놓은, 복제의 복제가 만들어낸 거대한 시뮬라시옹의 세계다. 어딘가 존재하는 실재로부터 멀어진, 재현의 재현이 완성시켜놓은 또 다른 가상이다. 청색과 대비되는 따뜻한 색감의 조명들은 코로나19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여행과 만남의 일상들을 상실한 채 묵묵히 견뎌내고 있는, 얼어붙은 우리들의 현실에 따뜻한 위안이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의 장치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갤러리일호에서 12일부터 18일까지 관람객을 맞는다. 입장료는 무료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