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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 1만% 살린 짠내 의사 웹툰… 드라마 만드니 매운맛 됐어요”

입력 : 2022-01-11 21:30:00 수정 : 2022-01-12 14: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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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과 박원장’ 원작 그린 의사 출신 작가 장봉수

지방 개원 7년간 에피소드 모아
의사들 사이트에 심심풀이 올려
“‘슬의’는 판타지… 이게 찐 의사”
입소문 타면서 방문자 폭발 인기

“고3때까지 의대와 미대사이 고민
불혹 한참 넘겨서 펜으로 갈아타
가족 반응 걱정했지만 좋아해 줘
다음 작품, 첫 도전 분야인 바둑”

# 음산한 기운의 사람들이 한 장소로 모여들고 있다.

 

흉부외과 김씨, 산부인과 최씨, 비뇨기과 장씨, 일반외과 강씨 등…. 이들이 모여든 곳은 ‘아잉뿌잉 미용학회’. 기기 사용법 설명을 듣던 중 한 남성이 “가까이서 보겠소” 라며 일어났다.

 

주변의 원성이 커지자, 그는 “난 비뇨기과라고. 이런 거 꼭 배워야 하는 사람”이라고 맞섰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우르르 뛰어나왔다. “당신만 어려운 줄 알아? 난 남산(남자 산부인과)이라고.” “난 CS(흉부외과)거든? 가족들이 굶고 있다고.” 한 달 후 또 다른 미용학회에서 이들의 싸움은 이어졌다. “난 빚만 10억이거든.” “난 20억이라고.”

 

오는 14일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로 공개되는 ‘내과 박원장’의 원작 웹툰의 한 장면이다. 드라마는 이서진(사진)의 첫 코미디이자 대머리역 분장으로 화제가 됐지만 원작을 관통하는 웃음 포인트는 ‘짠내 의사’다. ‘명의’를 꿈꾸며 의사가 됐지만, 현실은 ‘대머리 배불뚝이’ 아저씨가 된 채 객단가를 높이기 위해 어색한 웃음으로 비타민 주사와 피부 시술을 권해야 하는 개원의들을 향한 위로의 웹툰이다. 의사 출신의 장봉수(필명) 작가는 경험한 자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을 녹여 의술과 상술 사이를 오가는 의사들의 108번뇌를 재치 있게 꼬집었다.

장 작가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처음 웹툰을 그릴 때 의사와 관련한 이야기는 절대로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했다”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의사와 관련된 기사의 댓글은 늘 ‘악플’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에 의사 관련 웹툰은 공감을 얻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가 14년 전 처음 그린 웹툰도 ‘바둑광 박부장’이었다. 20화 가까이 공을 들여 바둑 만화를 그렸는데, 어느 순간 처음 의도와 달리 내용이 흘러가는 것을 느꼈다. ‘재정비’ 차원에서 ‘쉬어가는 코너’처럼 다른 내용을 그렸는데, 그게 ‘내과 박원장’이었다. 치열한 경쟁을 피해 지방에서 7년간의 개원의 경험을 살린 웹툰이다. 링크도, 캡처도 안 되는 의사들의 사이트에 ‘동병상련’을 위해 심심풀이처럼 올린 만화였다. 내용 중에 가족 얘기가 포함되기에 정부 심의보다 무서운 ‘와이프 검열’ 통로로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게 발단이 됐다. 조회수 0의 블로그였는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은 판타지고, 이게 ‘찐’ 의사생활”이라며 의사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면서 갑자기 방문자가 폭증했다.

사진=네이버 웹툰 제공

그렇게 의도치 않게 만화가 떴다. 의사 생활을 병행하며 취미로 그리던 만화였기에 장 작가는 자신의 신원을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입장 바꿔서 내 몸을 맡긴 의사가 퇴근하면 만화를 그린다는 생각을 하면 신뢰가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그러나 웹툰이 드라마화되면서 그의 인생에도 변곡점이 왔다. 불혹이 한참 넘은 나이에 과감하게 청진기를 놓고 펜으로 갈아탄 것이다. 이쯤되니 얼굴을 공개해도 되지 않을까 했는데, 너무 오래 ‘신비주의’를 유지하다보니 이제는 사람들의 ‘기대감’이 부담이 됐다. 내과 박원장의 시원한 대머리와 볼록 나온 올챙이배에 필적할 만한 외모가 아니었던 게 이유다.

“아내도 그동안 ‘의사 그만두고 갑자기 만화가하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드라마화된 것이 큰 영향을 준 거 같아요. 특히 이서진씨가 캐스팅된 게 컸죠. 처음부터 대머리인 배우들보다 더 좋은 거 같아요(웃음).”

장 작가의 아이들도 아빠가 의사인 것보다 만화가가 된 것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아빠가 만화 그린다고 친구들에게 자랑하고 다닌다”는 것이 그 증거다.

현실감으로 다가간 웹툰이었던 만큼 독자들의 관심사는 캐릭터와 에피소드의 ‘사실 여부’다. 특히 허영과 사치에 물든 박원장 아내 ‘사모림’에 대한 묘사는 웹툰 연재에서도 논란이 일었다. 적자에 허덕이는 박 원장이지만, 사모림은 허구한 날 피부과와 영어유치원 등에 수백만원의 지출을 한다. 이런 내용 때문에 부부싸움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아니요. 엄청 깔깔거리고 좋아했어요. 자신과 너무 다른 캐릭터다보니 너무 달라서 ‘이 여자 웃기네’ 하고 웃음이 나는 것 같고, 또 일부 비슷한 부분이 나오면 비슷해서 재미있어 하고….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웃음).”

장 작가는 발톱을 깎아달라는 환자, 병원에서 난동을 부리는 어린이, 병원 운영의 ‘상술’을 전수받는 장면 등 “다양한 에피소드는 100%, 아니 1만% 경험”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아마존에서 전염병에 감염돼 온 환자의 경우 마찬가지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퍼질 당시 경험담이다. 그는 “메르스 환자 붙잡고 겨우 전화해서 신고하는데 한가하게 당국에서 ‘보고서’를 올리라고 했다”며 “그 얘기 듣고 완전 황당해서 ‘이건 반드시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었다.

드라마에는 웹툰의 모든 에피소드가 담기진 않았다. 일부 중요한 에피소드와 함께 내과 박원장 주변의 의사들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그는 “드라마다보니 도덕적 마인드로 접근해서 많이 순화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장사꾼 마인드나 와이프 사치하는 것을 더 강조해서 완전 매운맛이 됐다”고 설명했다. “모든 의사가 돈 잘 버는 것은 아니다”는 ‘짠내’ 주제의식을 그대로 가져간 점에서도 만족감을 표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의대와 미대 사이를 고민하던 그는 이제 ‘미술’로 완전히 갈아탔다. 그 시절 독학으로 그렸던 수천장의 데생은 이제 장 작가의 밑바탕이 됐다. 무거운 의사 가운보다 좀더 가벼운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까.

“아유. 웹툰 세계도 완전 피라미드예요. 의료계보다 살아남기 어려워요. 내과 박원장은 어쩌다 잘된 웹툰이죠. 그전에는 연재해달라고 원고 보내도 읽어보지 않았다면 이제 읽어는 봐준다 정도가 된 게 그나마 다행이랄까요.(웃음)”

다음 작품은 또다시 바둑으로 돌아간다. ‘천재 소녀의 엘리트 바둑 기사 도장깨기’ 정도로 요약된다. 한 줄 요약만으로는 ‘내과 박원장’을 뛰어넘는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뭔가 더 없냐는 질문에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 “과연 그 성공이 진짜 성공인가는 한번 보셔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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