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에서 조율과 협력” 강조하며 러시아 견제

‘내정 불간섭’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중국이 카자흐스탄의 반정부 시위를 ‘테러’로 규정하며 군사 지원 의사까지 내비쳤다. 미국 등 서방국가의 신장위구르지역 인권 문제 비판 등에 대해 “내정에 간섭하지 말라”고 강조하던 중국이 다른 국가 내정에 직접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미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영향력 확대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려는 모습으로 해석된다.
11일 신화통신 등에 따르면 왕이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은 전날 무흐타르 틀레우베르디 카자흐스탄 부총리 겸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카자흐스탄의 미래와 운명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인 순간에 안정을 유지하고 폭력을 종식시키는 데 있어 확고한 지지를 표명한다”며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도 아래 평온을 되찾고, 암흑의 시기를 이겨낼 때 카자흐스탄은 더욱 견고하고 강대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왕 부장은 “중국 측은 카자흐스탄과 협력해 양국 정상이 도달한 중요한 정치적 합의 이행과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용의가 있다“며 “중국은 카자흐스탄과 협력해 법 집행 및 보안 부서의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치안 등의 명목으로 군사 지원 의사를 피력했다.
또 서방 주도의 ’색깔혁명(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시민혁명)’ 도모와 카자흐스탄에 대한 외부세력의 간섭 및 유입에 반대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은 그동안 미얀마, 태국, 수단, 짐바브웨 등 쿠데타가 벌어진 국가에 대해 직접적인 개입 의사를 밝힌 적이 없다. 외교부는 “갈등을 잘 처리해 정치·사회 안정을 도모하길 바란다”, “양측이 자제하고 대화 협의를 강화해 달라”는 식으로 내정 불간섭 원칙을 일관되게 고수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발생한 쿠데타와 관련해 중국은 “정변(쿠데타)으로 권력을 빼앗는 것에 반대하며, 즉각 대통령을 석방할 것을 촉구한다”며 내정 개입을 하는 등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이런 와중에 카자흐스탄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자 더 적극적으로 개입에 나선 것이다.
앞서 시진핑 국가주석은 지난 7일 토카예프 대통령에게 보낸 구두 메시지에서 “단호하게 강력한 조치를 취해 사태를 신속히 수습한 것은 정치인으로서의 고도의 책임감 있는 입장을 체현한 것”이라며 색깔혁명 및 외부세력 간섭 반대를 강조했다.
중국이 카자흐스탄 사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많은 이해 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은 중국의 ‘일대일로(중국-중앙아시아-유럽을 연결하는 육상·해상 실크로드)' 주요 참여국이다. 중국과 카자흐스탄의 경계 지역인 호르고스 지역은 물류 허브이자 주요 송유관이 지나가는 장소다. 중국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계 여러 지역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고 에너지, 반도체, 기술, 경제 및 무역 분야의 대외 의존도도 심화됨에 따라 중국이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의 중국 영향 차단 목적도 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 이웃 국가들의 폭력이 신장 지역으로 확산될 수 있다는 점을 오랫동안 우려해왔다. 카자흐스탄이 불안해지면 신장 위구르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하는 외부 세력이 카자흐스탄에서 세를 키울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 확대도 견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왕 부장은 전날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전화 통화에서 “옛 소련권 안보협의체 집단안보조약기구(CSTO)가 카자흐스탄의 주권을 존중한다는 전제에서 테러 세력과 싸우고 안정을 회복하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왕 부장은 “양측은 조율과 협조를 강화해 외부 세력의 중앙아시아 국가 내정 간섭을 반대하고 색깔혁명과 ‘삼고세력’(테러리즘, 분리주의, 극단주의)의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며 “(중국과 러시아 주도의) 상하이협력기구와 CSTO가 조율과 협력을 강화해 지역 안보가 직면한 각종 과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러시아에 조율과 협력을 강조하며 카자흐스탄 사태에 대해 중국과 협의를 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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