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창업가들 만나 애로사항 청취
‘여가부 폐지 이슈’에는 유보적 입장
尹 겨냥 “우리사회 개선 대안 말해야”
“고용보험 넘어 전 국민 소득보험을”
‘장기추진과제’ 전제로 첫 공식 언급
“男 육아휴직 안 쓰면 페널티” 거론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는 10일 일하는 여성들의 고충을 경청하며 연일 젊은 여성 유권자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다.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최근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을 앞세워 ‘이대남(이십대 남성)’을 겨냥한 집중 공세를 벌이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후보는 윤 후보를 향해 “(여가부를) 폐지한다, 반대한다를 넘어서 어떻게 하면 우리 사회가 더 개선될 수 있는지 대안을 말씀해 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이날 오후 동작구 스페이스살림에서 열린 ‘일하는 여성을 위한 스타트업 대표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공약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논란이 뜨거운 여가부 폐지 이슈에 대해 직접적인 찬성이나 반대 입장을 밝히기보다는 유보적 입장을 보인 것이다. ‘이대녀(이십대 여성)’를 비롯한 2030여성에 우호적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이대남 표심 역시 잃지 않겠다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분석된다.
이 후보는 최근 불거진 정치권 내 페미니즘 논란에 대해선 “꼭 남녀로 갈라 볼 문제는 아니고, 차별적 요소는 시정하고 평등적 요소는 강화한다는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여성 창업가들과 간담회에서도 “한때 정치권의 의도적인 분열 책동 전략 때문에 지역으로 나뉘어 서로 증오하고 갈등했던 일이 있었다”면서 “요새는 성 갈등을 정치적으로 너무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는 한 참석자가 가사도우미에 대한 비용 보조가 필요하다고 하자 “특정 수요자의 일을 해주는 것이라 고용이라 볼 수 없고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며 “최근에 고용보험을 전 국민 고용보험으로 하자고 했는데 이를 넘어 전 국민 소득보험으로 가는 게 맞겠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방향은 그렇게 가야 맞다”고 했다. 장기적 추진 과제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이 후보가 공식 석상에서 전 국민 소득보험을 언급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그는 특히 경력단절과 관련해 “남성과 여성의 육아돌봄 책임을 균등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라며 남성이 육아휴직을 활용하지 않을 시 페널티를 부과하는 방안 등을 거론했다.

이 후보의 이 같은 행보는 무주공산이자 자신의 취약 지지층인 2030여성을 공략하기 위한 것으로 분석된다. 최근 각종 대선후보 지지율 여론조사를 보면 40∼50대에서 이 후보, 60대 이상에서 윤 후보가 각각 우위를 점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반면 20∼30대 사이에서는 후보 선호도가 뚜렷하지 않고 부동층이 여전히 두 자릿수로 다른 연령대에 비해 비중이 크다.
이 후보 측은 윤 후보의 행보를 이대남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성별 갈라치기’로 규정, 선을 그으면서 공약과 일정 등을 통해 2030여성 유권자들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있다. 이 후보는 지난 7일 여성 인권, 페미니즘 등을 다루는 유튜브 채널 ‘닷페이스’에 출연한 데 이어, 9일에는 마포구 카페에서 청년들과 만나 “페미니즘도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선대위 권혁기 공보단 부단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윤 후보의 여가부 폐지 입장에 대해 공식 논평을 낼 계획이 없다”며 “선거를 진흙탕으로 끌고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이슈에 참전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민주당 선대위의 핵심 관계자도 “윤 후보가 2030 이대남을 중심으로 여가부 폐지 소리를 하는데, 우리 국민은 합리적이어서 그런 (남녀 편 가르기) 선거전략이 성공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이날 윤 후보의 ‘병사 200만원 월급’ 공약에 대해 “윤 후보가 모처럼 이 후보와 모처럼 동일한 내용으로 공약을 발표했다”고 논평을 내며 이대남 표심 선점을 두고 신경전을 벌이기도 했다.
다만 이 후보의 이 같은 행보가 실제로 득표에 도움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당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조금씩 깨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이 후보가 여성에 대한 벽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형수욕설’ 등이 결부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대장동 문제도 마찬가지지만, 이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사과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李 “민법 바꿔 미성년 빚 대물림 막겠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0일 미성년 상속인의 부모 빚 대물림 방지를 위해 민법을 바꾸겠다고 발표했다. 또 수시전형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입시 전문가·학생·학부모·교사가 참여하는 ‘대입 공정성 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후보는 이날 페이스북에 44번째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공약에서 “젊은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부모의 빚을 떠안은 채 신용불량자가 돼 사회에 첫발을 내딛지 않도록 제대로 보호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후보는 “우리 민법은 상속을 포기하거나 상속 재산 한도 내에서만 부모의 빚을 책임지는 한정승인 제도를 두고 있으나, 법정대리인이 이러한 사실을 안 날로부터 3개월 안에 신청해야만 한다”며 “그러나 법정대리인이 법률 지식이나 대응능력이 부족해 부모 빚을 떠안은 사례가 많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2016년부터 2021년 3월까지 부모 빚 대물림으로 개인파산을 신청한 미성년자가 80명에 이른다”며 “2020년 11월 대법원은 이런 문제로부터 미성년 상속인을 보호할 입법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는데 법정대리인이 한정승인 기회를 놓쳤다면, 미성년 자녀가 성년이 된 후 일정기간 내에 한정승인을 할 수 있도록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후보는 “정부와 지자체가 법 개정 전까지는 미성년자 상속 관련 법률지원을 최대한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관련 입법을 최대한 서두르겠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이날 교육 대전환 정책공약 발표에서는 대입 공정성 강화 등 8대 공약을 내걸었다. 이 후보는 “수시전형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대입 공정성 위원회를 설치·운영하겠다”며 “각 대학 수시전형의 전 과정을 모니터링하고 선발 결과를 분석해 학생과 학부모에게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수시전형의 입시 부정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엄단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학입학 전형의 공정성과 투명성 확보를 위해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공입학사정관제를 도입하겠다”며 “대학수학능력시험에 초고난도 문항 출제를 없애고 출제와 검토과정에 교사의 참여폭을 확대하고, 수능 문항 검토에 대학생이 참여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또 “전형별 모집 인원의 조정과 대학의 정시와 수시 비율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며 “현재 수능은 시행 30년이 돼 이제는 현실에 맞는 수능으로 재검토해야 할 때”라고 했다.
고교학점제 대비와 관련해 선대위의 박백범 전 교육부 차관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3학년 1학기까지 개인별, 과목별로 진단하고 보정해 주는 프로그램을 가져갈 예정”이라며 “중학교 3학년 1학기에 진단해 모자라면 3학년 2학기에 보충 프로그램을 운영해 고등학교 진학 이후 고교학점제에 적응할 수 있게 하겠다. 단순하게 일제고사처럼 진단해 서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정하는 후속조치가 뒤따른다”고 덧붙였다.

◆尹 견제 ‘이중전략’… 與는 때리고 李는 조용
“성범죄 처벌 강화·무고죄 처벌 강화”, “여성가족부 폐지”, “병사 봉급 월 200만원” 등 한 줄 공약에 이어 ‘달·파·멸·콩(달걀·파·멸치·콩)’ 인증샷과 59초 쇼츠(Shorts·1분 이내의 짧은 동영상) 공약까지. 최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메시지도 명확해지자 더불어민주당이 맹공을 퍼붓고 있다. 공세 수위도 ‘대놓고 막장’, ‘자질에 의심이 간다’, ‘일베놀이’라며 격해지고 있다.
민주당 송영길 대표는 10일 선거대책위원회 세대공감위원회 발대식에서 “일베 같은 놀이를 하는 것 같다”며 “여가부 논란도 이대남과 이대녀 갈등을 조장하고 멸치 논란, 색깔론을 갖고 표를 가르는 모습이 참 유치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날 오후 제주 한라대에서 열린 제주 선대위 출범식에서도 “윤 후보나 김진태·나경원 (전 의원) 이런 분들이 멸치를 사고, 콩을 사고 이런 유치한 행위를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라며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윤호중 원내대표도 이날 열린 중앙선대위 회의에서 “이준석 대표 감독 아래 대놓고 막장 연기를 한다”며 “무엇을 반성하고 쇄신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윤 후보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한 줄 공약, ‘여성가족부 폐지’를 두고서는 “아무리 준비가 안 됐기로서니 지지율을 얻겠다고 국민 분열, 젠더 갈등을 조장하는 위험한 일을 한다”고 꼬집었다. 또 ‘멸콩’ 인증에 대해서도 “모 유통업체 대표의 철없는 멸공 놀이를 말려도 시원찮을 판인데, 이것을 따라 하는 것 역시 자질을 의심케 한다”고 날 선 공격을 이어갔다.
김용민 최고위원은 윤 후보의 ‘멸콩’ 사진에서 윤 후보가 들고 있는 멸치가 ‘여수 멸치’임을 강조했다. 여순항쟁 당시 자행된 민간인 학살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지적이다. 김 최고위원은 “여수 멸치를 든 것은 ‘개 사과’와 같은 발상”이라며 “아픈 역사를 건드리면서 국민을 갈라 세우는 장난질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영배 최고위원도 “일베 후보, 일베 정당 인증 삼매경“이라며 “지지율이 여의치 않자 다퉈 일베에 충성을 맹세하면서 화력을 지원하는 모양새”라고 비난했다. 선대위 명예상임위원장을 맡은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누가 대선을 역대 최고급 코미디쇼로 만드는가”라며 “대선 경쟁이 미래 비전으로 경쟁해야 하는데 과거를 가지고 쓸데없는 데 에너지 낭비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선대위 차원에서 날 선 대응이 이어지는 것과는 달리 이재명 후보는 조용하다. 결국 투표일이 다가올수록 ‘인물’이 주요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는 계산에서다. 민주당 선대위는 윤 후보보다 이 후보가 국정운영 능력, 행정력, 미래 비전에서 앞서는 만큼 투표 효능감도 더 높다는 차원에서 선거전략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국민의힘이 마련한 전장에 뛰어들 필요가 없다는 전략적 계산도 한몫한다. 선대위 핵심 관계자는 “가성비(가격 대 성능비)라는 기준은 단순히 소비 흐름만이 아니다. 투표에서도 주된 기준이다”라며 “투표일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국민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가가 주요 판단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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