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 위험 커 계획서 제출 의무
시공사·공단측 모두 늑장처리
공단측, 화재 위험 지적하고선
조치 않고 조건부 적정판정 내려
현장감독서도 6차례나 지도만
“시공사·고용부, 기본의무 져버려”

소방관 3명이 순직한 화재 참사가 난 평택 팸스 물류센터(냉동창고)의 시공사가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착공 이후에 고용당국에 뒤늦게 낸 것으로 확인됐다. 산업재해 가능성이 큰 건설 현장에서 제출해야 하는 유해·위험방지계획서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착공 이전까지 반드시 제출해 고용당국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평택 팸스 물류센터 현장은 고용당국이 계획서 미제출 여부를 파악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를 시작했다. 이후 업체가 뒤늦게 제출한 계획서를 토대로 심사한 결과 화재 안전 관련 주의 사항이 다수 지적됐지만, 고용당국이 착공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면서 공사가 계속 진행됐다. 해당 업체의 안전 불감증과 함께 고용당국의 감독 부실도 참사의 원인으로 도마에 오를 수 있는 대목이다.
10일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비례대표 의원실에 따르면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2020년 2월21일 착공한 팸스 물류센터 건설 현장이 ‘연면적 5000㎡ 이상의 냉동·냉장창고시설 설비·단열공사 사업장’으로 계획서 제출 대상임을 뒤늦게 파악하고 이듬해 3월 22일 계획서를 제출 받았다. 공사가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나도록 현장의 문제점을 살펴보거나 위험 방지 대책이 부실할 경우 착공 자체를 재검토하는 등 특단의 조치를 내릴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다.
계획서 미제출은 관련법에 따라 건당 최대 10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뿐 형사처벌 사안이 아니다. 소정의 과태료로 면피할 수 있어 건설 현장의 안전 불감증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계획서 미제출 등으로 과태료가 부과된 사업장은 지지난해 514개소로 2017년 138개소에서 3.7배나 늘었다.
고용당국은 특히 지난해 4월 팸스 물류센터 현장의 계획서를 심사해 공사 현장의 화재 위험성을 다수 지적했음에도 착공에 제동을 걸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심사 결과 통지서에서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작성 및 화재폭발 방지 조치 △인화성 물질 사용 시 방폭형 전기기계·기구 사용 △가연성 물질을 화재 위험장소에서 분리 및 저장 △화기작업 시 사전에 안전조치를 취한 후 안전보건관리 책임자에게 승인을 받고 작업을 하는 ‘화기작업 승인제’ 도입 등을 권고했다. 이를 포함해 점검 항목별로 도합 15개의 위험 사항이 드러났으나 고용당국은 착공에 ‘조건부 적정’ 판정을 내렸다.
해당 시공사는 고용당국의 현장 감독에서도 꾸준히 화재 위험성 관련 지적 및 주의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공단은 2020년 4월 시공사 측에 불티 비산 작업 시 주변 인화성 물질 제거 등을 주문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우레탄 작업 시 용접 금지 및 환기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해 3월과 5월, 8월에도 각각 단열 작업과 화기 작업을 동시에 하지 말라고 권고했다. 아울러 이번 화재가 일어나기 40여일 전인 지난해 11월23일에는 지상 4층 배관 절단 작업과 관련해 불티 비산 방지포 미설치 등을 보완하라고 지적했다. 이수진 의원은 “계획서 제출은 시공사의 기본 의무인데, 고용당국마저 뒤늦게 미제출을 적발한 것은 이번 참사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라고 꼬집었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이날 경기도소방재난본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 관계자 40여명과 함께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현장 합동 감식을 벌였다. 감식은 화재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불이 처음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 1층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불길이 재확산한 이유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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