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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신뢰받는 경찰’ 공염불 안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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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1-07 22:47:53 수정 : 2022-01-07 22:4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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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조사에서 구체적 증거가 나오면 좋을 텐데….”

 

지난달 16일 청소년 자살 문제를 취재하다 연락이 닿은 경남 지역 학부모 A씨가 기자와 통화하다 말끝을 흐렸다. 반년 전 극단적 선택으로 유명을 달리한 고등학생 딸과 관련한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 진행 상황을 설명하던 중이었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A씨는 딸이 사이가 틀어진 친구에게서 괴롭힘을 당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봤다. 딸의 휴대전화에서 나온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대화 내용과 친구들의 증언을 근거로 그렇게 추정했다. 하지만 학폭위를 통한 가해 의심 학생 징계를 위해서는 보다 직접적인 증거가 필요했다. A씨가 6개월째 진행 중인 경찰 조사에 기대를 건 이유였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기대보다 불안이 커졌다고 했다. 경찰이 사실관계를 파헤칠 의지가 있는지 미덥지 못해서였다.

 

일주일 전 A씨 남편은 ‘딸 사건과 관련해 가족 측이 요청한 내용을 포함해 조사했지만 특이사항이 없었다’는 담당 형사의 문자메시지를 받기도 했다. 남편은 연락을 받자마자 전화를 걸어 미비한 내용에 대한 추가 확인을 요청했고, 담당자는 ‘더 알아보겠다’는 답변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기자가 경찰에 확인해 보니 담당자가 사실상 거짓말을 한 셈으로 드러났다. 유족 측의 경찰 불신이 괜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기자가 A씨와의 통화 직후 해당 경찰서 간부에게 물어보니, 이미 경찰은 A씨 딸 사건에 대해 ‘단순 자살’로 결론짓고 종결한 상태였다.

 

조사 담당자는 애끊는 부모의 심정을 헤아려 ‘착한 거짓말’이라도 했던 걸까. 그날 기자가 확인하지 않았다면 A씨는 일말의 기대감을 가진 채 경찰의 연락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것이다. “경찰이 그간 제대로 조사를 하지 않았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기자가 경찰 간부와 통화한 내용을 전하자 A씨는 이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지난해 말 인천 남동구 흉기난동 부실대응 사건과 서울 중구 신변보호 여성 피살 사건 등으로 경찰에 대한 비판 여론이 거셀 때 경찰 지휘부는 연일 ‘국민 신뢰 제고’를 부르짖었다. 최근에도 김창룡 경찰청장은 울산에서 현장 경찰관들을 만나 “경찰에 대한 시민 신뢰를 높이자”고 독려했다. A씨 가족이 사는 지역을 관할하는 이상률 경남경찰청장 역시 지난달 취임식에서 “자신감 있고 일관성 있는 당당한 법 집행으로 주민들로부터 신뢰받는 경찰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찰 지휘부의 호소와 선포가 A씨 가족들에겐 어떻게 들렸을까 쉽게 짐작된다. 공허했을 것이다. 실제 현장에서 각종 치안서비스를 담당하는 경찰공무원 한 명 한 명이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한 경찰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는커녕 가랑비에 옷 젖듯 불신만 쌓일 수밖에 없다.

 

결국 A씨는 관할 교육청으로부터 ‘증거가 충분치 못해 가해 의심 학생에 대한 조치가 불가하다’는 학폭위 결정을 통보받았다. 며칠 전 A씨에게 학폭위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여부를 물었을 때 “지금은 마음을 다 비웠다”란 짧은 답만 들을 수 있었다. A씨가 비워버린 것 중에는 분명 경찰에 대한 믿음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김승환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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