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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다시 등장한 ‘부자 되세요’ 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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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20 23:10:45 수정 : 2021-12-20 23: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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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부자 되세요’ 광고가 20년 만에 다시 등장했다. 최근 한 걸그룹 멤버가 2001년 12월 배우 김정은씨가 촬영한 광고 배경과 콘셉트를 똑같이 살려 ‘부자 되세요’ 카피를 외쳤다. 하얀 눈밭 배경과 빨간 스웨터, 흰 목도리·빵모자 의상까지 똑같았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리메이크한 광고를 봤다. ‘부자 되라’는 주문이 너무나 강렬했는지 초등학교 5학년 때 본 광고가 금방 다시 떠올랐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

정말 부자가 되는 줄 알았다. 광고 카피는 주문과도 같았다. 그때는 신용카드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날이 갈수록 부모님의 지갑에는 여유가 생겼다. 한 달에 1∼2번 시켜먹던 치킨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시켜먹을 수 있게 됐다. 학원도 조금 더 다닐 수 있게 됐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중·고등학교 다니면서 눈치 보지 않고 군것질하던 소소한 즐거움은 성장의 과실 중 하나였다. 광고를 제작한 BC카드는 물론 배우 김정은씨도 해당 광고 이후 더욱 승승장구했다.

20년 만에 다시 본 ‘부자 되세요’ 광고는 반가웠지만 거기까지였다. 더는 주문이 될 수 없었다. 현실에선 내가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여름 결혼 준비 때문에 부동산 임장(현장조사)을 다니면서 “조금만 더 서두르시지”, “지금도 늦지 않았다”는 상반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었다. 9호선 역세권의 아파트에 사는 내 또래의 집주인은 조금 빨리 결혼해서 집을 산 덕분에 2년 만에 3억∼4억원이 오른 가격에 집을 내놓았다. 내가 ‘일만’ 하는 동안 몇 년의 연봉을 고스란히 모아야 낼 수 있는 만큼의 가격이 오른 것이다. 위치도, 집도 다 마음에 들었지만, 도저히 그 가격에 집을 살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자’라는 광고카피는 당시 세태를 반영한 하나의 키워드였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과 ‘나도 잘 먹고 잘살고 싶다’는 욕망이 광고 카피에 함께 담겼다. 20년이 지난 지금은 욕망은 여전하지만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이 멀어지면서 공정에 대한 열망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내가 부자(성공)가 될 수 없다면 적어도 부자(성공)가 되는 과정에는 반칙과 특권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입시 비리에,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아내 김건희씨의 경력·이력 부풀리기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재판거래 의혹에 분노하는 공통적인 이유는 반칙이다. ‘나는 (스스로)부자가 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깨달은 2030 세대에게 입시와 취업, 재판에서 공정성을 훼손한 것은 ‘나만 부자가 되겠다’는 이기심과 다름없다.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라고 외치는 광고 모델의 외침이 20년 만에 공허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정이 상식이 되는 나라”(윤석열 후보), “공정한 성장 실현”(이재명 후보)을 외친 대선후보들은 왜 20년 만에 ‘부자 되세요’라는 카피가 마법의 주문에서 반어적인 표현이 됐는지 곱씹어 봐야 한다.


이창훈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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