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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다시 안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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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17 22:36:26 수정 : 2021-12-17 22:36:25
신수정 명지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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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안산 오르며 산행 기쁨
숱한 시도끝 ‘최적의 코스’ 찾아
코로나 시대 제약된 생활에도
‘루틴’ 찾을 때 삶은 건재하다

안산 자락 아래로 이사 온 이래 이웃에 사는 영화평론가 남다은의 인도로 산에 오르는 기쁨을 알게 됐다. 산이라니, 오래전부터 나를 알아 왔던 사람들이라면 코웃음을 칠 수도 있겠다. 나라고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때는 그때이고 지금은 지금이다. 등반할 때마다 늘 뒤처져 동료들의 짐이 되곤 했던 나는 더 이상 없다.

서대문구의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어 여러 동네에서 접근하기 쉬운 안산은 동네 뒷산이라는 애칭처럼 사람들의 발걸음이 빈번한 산이다. 드나드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무 밑동이 그대로 드러나 있거나 때로는 산 정수리가 허옇게 보일 정도로 길이 나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이 산을 만만하게 보면 곤란하다. 오랜 기간 서울 도성의 안위를 지켜온 산성으로서의 위엄이 없지 않다. 해발 295.9m 산 정상의 봉수대는 평안도에서 올라온 봉화를 남산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고도 한다. 일상이 돼버린 역사의 현장이라고 할까. 안산에서 내려다보면 서울 시내가 신비한 시간의 원환 속에서 일렁이는 느낌도 없지 않다.

신수정 명지대 교수·문학평론가

처음 대략 7㎞에 달하는 둘레길 주변을 도는 것으로 시작한 나의 안산행은 이제 서대문구청의 세심한 손길이 곳곳에 스며 있는 나무 데크를 지루해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편리하고 안전하게 산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둘레길은 너무 밋밋해서 산을 오르내리는 강렬한 경험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즈음 나의 산행은 주로 이화여대 후문 금륜사에서 시작해 복주천을 지나 능안정에 이르러 정상의 봉수대에 오른 다음 무악정 방향으로 접어들어 봉원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이용하고 있다. 아현역 근처의 집까지 빠르게 걸으면 1시간40분, 조금 여유를 부리면 2시간, 약 6㎞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을 찾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길이 나의 길이 되기까지 거의 일 년이 걸린 듯도 하다. 그 기간 내내 나는 이 코스도 가보고 저 코스로도 정상에 올라보았다. 어떤 날은 과감하게도 안산 정상에 오른 뒤 구름다리를 통해 인왕산으로 건너가 다시 정상에 오르고 서촌으로 내려오는 루트도 시험해 보았다. 죽는 줄 알았다. 온몸이 솜뭉치처럼 늘어지고 손발이 떨려서 다음날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였다. 그러고 나서 나는 내가 애용하는 저 코스가 나에겐 딱 안성맞춤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오르내리는 정도도 적당하고, 코스도 다양하고, 흙과 바위가 섞여 있는 상태도 적절했다. 가끔 컨디션이 좋은 날에는 일부러 메타세쿼이아 숲길로 돌아오거나 반대로 독립문 방향으로 우회해 보기도 하지만 뭔가 과하거나 빈 느낌이 들었다. 이제는 안다, 더 멋지고 좋은 코스가 있겠지만 나에겐 이 길이 최고라는 것을.

어쩌면 코로나19가 종식되는 날, 그런 날이 올까 싶은 나날이 지속되고 있어 꿈만 같은 소리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날이 오면 나는 나의 산행에 지금보다 덜 만족할 수도 있겠다. 더 멀리, 더 높이, 더 많은 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의 흥에 겨워 소박하고 조촐했던 나의 안산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내 수준에 꼭 맞는 나의 길을 찾아 이렇게도 가보고 저렇게도 가보던 이즈음의 나날들을 쉽게 잊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 길의 루틴이 2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의 거리두기 일상을 견딜 수 있을 만한 것으로 바꾸어 주었다. 어떤 곤경 속에서도 최적의 코스를 찾아내고 그것을 삶의 루틴으로 만들어내는 일상이 건재한다면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저물어가는 한 해의 끝에서 나는 빌고 싶다. 어떤 날에는 지구 끝까지 가볼 수 있는 탈주의 행운을 주소서. 그러나 대부분의 많은 날 나에게 동네 뒷산을 오르는 일상의 루틴을 허락해 주소서. 나는 이제 아는 것이다, 그것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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