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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시대 고통 담은 서사 늘어… 수준작 많지만 참신성 아쉬워”

입력 : 2021-12-14 21:30:00 수정 : 2021-12-14 20: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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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평

■단편소설
묵직한 필력 기반 실존 의미 탐색
응모작 수준 고루 향상·진중해져

■시
난해성 줄고 소재·표현 등 일상화
차분하고 서정적인 시들 주류 이뤄
지난 10일 서울 용산구 세계일보 사옥 31층 유니홀에서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진행되고 있다. 왼쪽부터 시인 김종태, 천수호, 소설가 정길연, 해이수, 평론가 오태호 심사위원. 남제현 선임기자
2022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예심이 지난 10일 끝났다. 응모 편수는 지난해보다 조금 줄었다. 단편소설 744편과 시 1065건(1건당 3편 이상, 모두 3195편 이상), 평론 46편이 각각 응모 접수됐다. 소설 예심은 소설가 정길연, 해이수, 평론가 오태호씨가, 시의 예심은 시인 천수호, 김종태씨가 맡아서 수고해줬다. 이날 예심을 거쳐 단편소설 15편과 시 34건이 예심을 거치지 않는 평론 응모작과 함께 본심으로 넘겨졌다.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이 2년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신춘문예 응모작들의 경향과 표징을 예심 심사위원들에게 들어본다.

 

정길연(소설가) : 비대면 시대의 고립이 자신과의 대면을 선행조건으로 하는 문학의 성장에 기여한 바가 컸던 듯, 응모작의 수준이 고루 향상되고 한결 진중해졌다. 비현실적 상상력을 가공한 작품이 줄고, 고통 또한 삶의 속성이라는 현실 인식을 담은 서사가 확연히 늘었다. 전체적으로는 나무랄 데 없는 문장력, 특정 분야에 대한 놀라운 디테일, 거기에 삶의 내공이 더해진 수준작이 많았다. 패기나 참신성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데, ‘공식’을 의식한 모범적 글쓰기의 부작용이 아닌가 싶다. 몇몇 ‘튀는’ 개성이 시선을 끌었지만 군계일학이 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결국엔 기본기가 탄탄한 작품이 좀 더 미더웠다. 흡입력, 균형감, 완주하는 힘 등 소위 ‘신춘문예용 소설’의 덕목에 기대어야 했는데, 어찌할 수 없는 선택이었단 생각이 든다.

해이수(소설가) : 예년에 비해 두세 편의 단편을 묶어서 응모하는 분들이 부쩍 늘었다. 풍부한 습작 경험을 가진 그룹이 세대를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증가한다는 뜻이다. 어디에 내놔도 흠을 잡기 어려운 작품이 그만큼 일반화되었다. 이런 시기일수록 고착된 판을 뒤흔들며 분위기를 압도하는 실험적 언어와 형식이 더욱 간절해지는데 아쉽게도 선자의 눈에 자주 띄지 않았다. 자아와 타인의 관계가 낡고 상투적일지라도 이를 드러내는 방식이 새롭고 남다를 때 서사적 질문은 생명을 얻게 된다. 관습의 언어와 일상의 형식으로는 역동적인 물음표를 생성하기 어렵다. 언어의 형식은 삶의 형식을 만들어낼 뿐만 아니라 작품의 형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설은 개성의 언어이며 창조의 형식이다. 이것에 닿아야 마음에 간직한 이야기가 강을 건널 수 있다.

오태호(평론가) : 코로나 시대의 우울감이 텍스트 사이로 스며들었다. 이방인적 정체성의 조망, 과거와 미래의 소환, 실직과 일용직 노동의 고투, 투병과 애증의 서사 등이 빚어졌고, ‘상처와 통증, 기억과 망각’ 사이로 실존의 의미를 탐색하는 도정이 단단한 문장 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서사적 개연성과 개성적 문체, 가독성 높은 필력이 ‘공들인 제목과 세공된 문장들과 화룡점정의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서로를 길항하며 투고자들의 진심과 전력 속에 드러나고 있었다. 각고분투의 치열한 도전이 고독한 서사의 면허증으로 더 늦지 않게 당도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현실과 상상의 외연을 넓히며 묵직한 글쓰기 노동을 엄숙하고 지속적으로 또한 기꺼운 마음으로 반복한다. 응모자들 모두에게 따뜻한 격려와 깊은 위로의 응원을 보낸다.

<시 부문>

김종태(시인) : 경향 각지에서 천 명이 넘는 분들이 수천 편의 작품들을 응모해 주었다. 그 수준도 다양했고 내용과 형식도 각양각색인바, 일상의 평범한 삶이나 그에서 기인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소재로 한 것이 가장 많았다. 한편 이들과는 달리 자연과 우주에 대한 형이상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들도 여러 편 눈에 띄었고, 팬데믹 시대의 고통과 절망을 다룬 작품들 역시 작년에 이어 계속되었다. 하지만 해독하기 어려운 난해한 작품들이 이전보다 준 것은 올해의 특징이었다. 간혹 신인다운 패기와 실험정신을 만날 때 한국시의 새로운 진화를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

천수호(시인) : 응모 편수는 작년과 비슷했다. 해외 응모자나 두툼한 시집 한 권 분량의 원고도 여전히 눈에 띄었다. 시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반가웠지만, 심사자가 주목하는 것은 응모자의 서사나 시의 분량보다는 시의 밀도이다. 무엇보다 사유의 깊이나 시선의 신선함이 중요하겠다. 응모 시편들은 사회적인 관심보다 개인의 휴식을 갈망하는 시가 많았다. 지친 이곳보다 꿈같은 저곳의 이야기를 풀었고, 세계 곳곳의 문화나 풍습에 관한 시가 많았다. 인간의 한계에 대한 회의처럼 신화적인 소재도 제법 있었고, 우주적인 탈출을 시도하는 시들도 상당했다. 난해한 시들도 더러 있었지만 차분하고 서정적인 시들이 주류를 이뤘다. 감각과 관찰력을 기반으로 하여 언어를 밀고 가는 힘에 주목했는데, 그런 시를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정리=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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