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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런의 시 탄생시킨 아름다운 ‘물의 성’ [박윤정의 원더풀 스위스]

관련이슈 박윤정의 원더풀 스위스

입력 : 2021-12-19 08:00:00 수정 : 2021-12-16 16:43:08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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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레만 호수의 ‘시옹성’

호수 위에 떠있는 듯한 시옹성
통행세 징수·지하감옥으로 유명
25채 건물·3개의 정원으로 꾸며져
한국어 관광책자도 있어 위상 실감

‘렌스’ 마을에서 만난 미술관
건물 유리창에 비친 자연 ‘예술품’
몽트뢰에서 약 3㎞ 떨어진 시옹성은 9세기부터 성벽을 쌓고 통행세를 받았다. 13세기에 지금의 형태가 갖춰졌다고 한다.

레만 호수를 곁에 두고 여러 날을 지냈다. 조금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은 가득하지만 또 다른 세상을 찾아 떠난다. 스위스 온천으로 유명한 ‘로이커바트’와 스위스 최고봉인 마터호른이 기다린다. 떠날 채비를 서둘러 스위스 남쪽으로 향한다. 호수를 벗어나려는데 아쉬운 마음을 아는지 발걸음을 붙든다. 거대한 성이 눈앞에 펼쳐진다. 바이런의 서사시 ‘시옹성의 죄수(Le Prisonnier de Chilon)’의 배경 지란다. 레만 호수와 어렴풋이 보이는 가파른 산악 지역 사이에 자리한 바위섬에 세워진 성, 통행세 징수와 지하 감옥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프랑스와 독일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는 이 성은 스위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하나이다. 현재는 통행세 대신 관광객에게 입장료를 받고 있다. 몽트뢰와도 가까워 많은 관광객이 찾아든다. 몽트뢰에 머물며 이국적인 식물과 야자수가 심겨 있는 아름다운 16㎞ 길이의 만(灣)을 버스, 기차, 선착장을 이용해 10분 만에 도착할 수도 있고 산책할 수도 있으니 누가 그냥 지나칠까 싶다.

시옹성 입구

멀리서 보면 육지 끝자락에 자리한 성인 듯싶었는데 다가가서 보니 걸어 들어갈 수가 없다. 성으로 들어서는 길 사이에 호수가 강처럼 흐르고 있다. 마치 호수 위에 성이 떠있는 듯하다. 설명서에 쓰여 있는 ‘아일랜드 캐슬’(island castle)이라는 표현 그대로다. 일반적으로 넓은 벌판에 세워진 성은 일부러 주변을 넓고 깊게 파서 방어 목적인 해자(垓子, moat)를 만들지만, 시옹성은 자연이 제 역할을 한다. 입장권을 구입하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매표소를 찾는다. 매표소 직원에게 티켓을 요청하니 어느 나라에서 왔나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건넨다. 혹여 한국 인사를 건네기 위한 질문인가 싶었는데 안내 책자를 티켓과 함께 건넨다. 한국어 팸플릿이다. 융프라우에서 본 컵라면 이후 한국어 서비스를 받으니 반갑다. 이제는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까지 서비스한다고 한다. 늘어난 한국인 관광객 덕분인지, 높아진 우리나라 위상 덕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뿌듯하다. 흥분된 마음으로 한글 책자를 들고 다리 건너 성안으로 들어선다. 수백 년간 이 섬에서 레만 호수의 배가 다니는 통로와 생 베르나르 패스(St. Bernhard Pass)로 통하는 중요한 육상 루트를 통제해 왔다고 한다. 수백 년 동안 왕가의 수익이 되는 통행세를 받아왔단다. 오랜 세월 걷어 들인 금액은 전부 얼마일까. 궁금증을 안고 성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선다. 넓은 공간의 마당이다. 밖에서 보던 성벽을 안에서 바라보니 다른 느낌이다. 밖에서는 크고 위협적이었는데 안에서는 보호막처럼 아늑하고 작아 보인다. 성안에는 여러 건물이 있는데 어디서부터 둘러보면 좋을까. 화살표를 따라 발걸음을 옮기니 사방으로 제각기 다른 계단이 보인다. ‘아! 맞다 한국어 팸플릿.’ 그제야 떠올랐다. 매표소에서 친절하게 팸플릿을 챙겨준 이유가 있었겠지. 팸플릿을 펼쳐보니 40개가 넘는 관람 코스가 표시되어 있다. 시옹성은 2개의 원형 벽으로 둘러싸인 25채의 건물과 3개의 정원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가이드 설명없이 차례대로 훑기만 해도 1시간은 넘게 걸릴 듯싶다. 먼저 지하를 보기로 했다. 베른의 지배를 받던 14세기부터 내려오는 벽화와 지하의 둥근 아치, 연회장과 침실이 원형 그대로이다. 주위를 둘러보고 차가운 벽을 따라 다시 마당으로 나온다. 여러 계단을 올라 망루 가까이 다가선다. 곳곳에 중세 분위기가 젖어 있다. 성에서 가장 높은 곳을 오르니 레만 호수 경치가 한눈에 담긴다. 바다 같은 호수 건너 지난 시간을 보냈던 몽트뢰, 로잔, 그리고 에비앙이 눈에 선하다.

피에르 아르노 재단은 2013년 렌스(Lens)라는 한적한 마을에 세워진 현대식 미술관이다. 84개 유리창이 전면 거울처럼 세워져 있다. 건물에 비친 알프스 풍광과 건물 밖으로 이어지는 알프스산맥 라인이 황홀한 경치를 만들어 낸다.

시옹성을 뒤로하니 이내 시야에서 물길이 사라진다. 또다시 눈 덮인 알프스 봉우리가 눈썹 아래 걸려 있다. 험한 길을 오를수록 차장 밖 경치는 더 멋스럽다. 온천 마을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산길을 따라 100㎞를 이동해야 한다. 좁은 길이라 피곤하지만 놀라운 풍광에 빠져든다. 이내 온몸이 뻐근하다. 마침 미술관 이정표가 보인다. 작은 마을을 구경할 겸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계획된 일정은 아니지만, 햇살을 온몸으로 가득 받고 싶은 날씨 덕분이다. 렌스(Lens)라는 마을이다. 한적한 시골 분위기가 넘치는 이곳은 지나가는 차량이 드문드문 보이고 트레킹하는 사람들도 간간이 만난다. 언덕을 천천히 오르니 건물 외벽에 ‘피에르 아르노 재단(fondation pierre arnaud)’이라는 글자가 쓰인 회색 건물이 보인다. 세련된 외관에 호기심이 일어 내부에 들어선다. 자연 채광이 따스하게 감싸고 은은하게 비추는 햇살이 마음을 편안하게 다독인다. 아프리카 분위기의 대형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빛을 따라 밖으로 나가니 건물 전면을 대형 유리창이 덮고 있다. 태양광 발전으로 활용되고 있는 84개 유리창이라고 한다. 외부에서 보니 건물 천체가 거대한 거울이 되어 반사광을 내뿜는다. 건물 각도에 따라 반사되는 알프스는 또 다른 작품이 됐다. 낯선 미술관에서 자연을 품에 안은 예술 작품에 넋을 놓는다.


박윤정 여행가·민트투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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