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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日 로스쿨과 사법예비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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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12 23:03:47 수정 : 2021-12-12 23:0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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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시험, 학력과 연령 제한 없어
로스쿨 도입 부작용 최소화시켜
대선판 ‘사시 부활’ 쟁점화 조짐
기회 공정성 측면 진지한 논의를

일본 게이오(慶應)대 법학부 1학년 오쓰키 린(大槻凜)군은 약관도 안 된 18세 나이로 올해 한국 변호사시험에 해당하는 일본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2006년 일본에서 법과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시작된 이래 최연소라고 한다. 한·일은 모두 3년제 로스쿨 제도를 도입했으나 한국에서 18세의 변호사시험 합격은 불가능하다.

 

일본에서 사법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통로는 두 가지가 있다. 우리나라처럼 로스쿨을 수료하는 것이 한 방법이다. 나머지 하나는 우리에게는 없는 사법시험 예비시험이다.

김청중 도쿄 특파원

예비시험은 시간적, 금전적 상황 등을 이유로 로스쿨을 경유하지 않은 사람이 사법시험에 응시할 자격을 얻을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은 제도다. 예비시험은 학력, 연령 제한이 없다. 그 덕분에 오쓰키군도 고교 3학년 때인 지난해 예비시험에 합격해 올해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일본은 2006년 로스쿨 제도 도입 시 구(舊)사법시험과 로스쿨이 공존하는 과도기를 설정했다. 이어 2011년 구 사법시험 제도가 완전히 폐지되고 신사법시험 제도를 도입할 때 예비시험 제도를 마련했다. 로스쿨만 존재하는 시기는 없었다.

 

예비시험이 만만하지는 않다. 사법시험보다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사법시험 단답식은 헌법 민법 형법 3과목인 데 비해 예비시험은 헌법 행정법 민법 상법 민사소송법 형법 형사소송법 일반교양과목 8과목을 치른다. 사법시험 논문식은 8과목인데 예비시험은 9과목. 또 사법시험에는 구술(면접시험)이 없으나 예비시험에는 있다. 3년간 전문대학원에서 법률을 연마한 로스쿨 수료자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사람을 골라내야 하는 만큼 까다로울 수밖에 없어 보인다. 예비시험 합격률은 연 3∼4%대로 올해엔 1만4317명이 응시해 3.99%(467명)가 합격했다. 올해 사법시험 합격률은 로스쿨 수료자 3024명 응시에 34.62%(1047명), 예비시험 출신 400명 응시에 93.5%(374명)이다.

 

예비시험은 로스쿨 재학생도 응시해 합격하면 시간과 돈을 절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이다. 도쿄대 로스쿨 수료 후 올해 사법시험에 합격한 A씨는 로스쿨과 예비시험 공존에 대해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거나 재학 중에도 예비시험을 함께 준비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며 “로스쿨에 여러 문제가 있어서 바뀌는 추세인데 후년부터는 로스쿨 수료 전인 3학년생도 사법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더욱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일본은 외국 로스쿨 제도를 들여오면서도 일본 현실을 반영한 보완 장치를 마련함으로써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일본식 전통과 외국 기술을 결합한다는 화혼양재(和魂洋才)의 현대판 구현이라고나 할까.

 

한국 대선판에서 사시 부활이 쟁점이 될 조짐을 보인다. 과거 사법시험은 개천에서 용 나온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계층 상승 사다리의 상징이었다. 2000년대 들어선 대학 입시, 고시의 제도 변경에 따라 금수저가 아닌 취약층의 계층 상승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가 계속되고 있다.

 

로스쿨 도입이 논의될 때 만났던 검사는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로스쿨 제도를 하면 내 자식들은 좋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최소한의 계층 이동도 없어질 것 같아 반대한다.” 외무고시를 대신해 외교관후보자선발시험 도입 후 한 외교관은 “나처럼 서울 외곽 출신에, 외교부 입부 전에는 외국 한 번 나가 보지 못한 사람은 이제 외교관 되기 힘들어진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오해나 과장일 수도 있다. 문제는 객관적 데이터가 아니라 주관적 감정이다. 대입, 고시, 병역은 우리 국민이 절대적 평등을 요구하는 대표적 분야다. 제도적으로 불공정·불공평이 개입할 바늘구멍만 한 여지만 있어도 직접 관계가 없는 국민마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분노하는 핵심 영역이다. 어렵게 시작되는 고민의 불씨를 맹목적 정쟁과 진영 대립의 찬물로 꺼트릴 게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신뢰 복원과 건전성 강화의 관점에서 진지하게 논의되기 바란다.


김청중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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