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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문학상’ 로이 “아자디! 모든 작고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것들이여”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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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2-01 07:30:00 수정 : 2021-12-01 10: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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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설계를 공부했을 때도,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직접 연기를 할 때도, 만족할 수 없었다. 경험하고 커뮤니케이션하는 세계와 우주,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충분치 않다는 걸 절감했다.

 

“만족할 수 없었어요. 소설을 통해 표현이 가능할 것 같았지요. 무엇을 생각하고 표현하는 데 있어서 소설이 가장 높은 예술형태라는 걸 깨달았어요.”

 

인도의 남부 케랄라(Kerala)주 아예메넴에서 성장한 작가 수잔나 아룬다티 로이(Suzanna Arundhati Roy)는, 글쓰기를 공부한 뒤 1992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 데 무려 4년의 시간이 걸렸다. 그리하여, 그의 첫 장편소설 『작은 것들의 신(The God of Small Things)』이 탄생했다. 권력의 폭주, 카스트제도와 가부장제, 힌두교의 종교차별, 인간의 욕망 등 거대한 전통과 관습에 의해 무너져 내린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명민한 구조로 아름답게 그린.

 

그는 작품을 완성했지만, 그 다음엔 무엇을 어떻게 할지 구체적인 계획이 없었다. 고민하다가 출판사와 관계가 있는 친구에게 글을 넘겼다. 한밤중, 글을 읽고 흥분한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 나를 믿고 기다려 보라고.

 

친구는 수많은 출판사 에이전트들에게 그의 글을 보냈다,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은 채. 친구의 출판사에 전화가 쏟아졌다. 모든 전화가 로이를 찾았고, 그 가운데 한 명이 런던의 출판사 하퍼콜린스의 문학담당 편집자 데이비드 고드윈이었다. 그의 자동차가 경찰에 끌려가서 정신이 하나도 없던 그날, 작품을 단숨에 읽은 고드윈이 전화를 걸어왔다고, 로이는 기억했다.

 

“로이, (다른 출판사와 출판 계약에) 사인하지 말고 내가 인도에 갈 때까지 기다려줘. 내가 곧 갈 테니까.”

 

작가만의 독특한 목소리와 이야기를 가졌다고 판단한 고드윈은 곧장 인도로 날아왔고, 로이를 만나자마자 출판 계약을 체결했다. 무려 16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선인세를 지불하고서.

 

“고드윈은 인도를 사랑하지만 인도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른다고 말했지요. 그때는 마치 저의 팔에 헤로인을 꽂아 넣는 것 같았어요. 책을 계약하고 출간하는 과정이 마치 매직 같았죠.”

1997년, 그는 인도의 거대한 전통과 관습에 희생당한 이들의 사랑과 작은 것들을 그린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한국어 번역판 문학동네, 2016)을 출간했다. 소설은 그해 부커상을 수상하면서, 그는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인도 여성 작가로서 첫 부커상 수상. 책은 출간 이후 세계 4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됐고, 6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가 됐다.

 

소설가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뒤 사회운동가로도 맹활약 중인 로이는 지난해 제4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했다. 문학상 심사위원들은 그의 문학 세계에 대해 “인도 역사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과 그것을 소설적으로 담아내는 뛰어난 문학적 능력”과 “계급적, 종교적 분열과 성적 소수자의 문제,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 역사적 상처를 모성의 품으로 끌어안는 유연한 젠더 의식” 등을 높게 평가했다.

 

이호철통일로문학상 수상식은 코로나 팬데믹 때문에 1년여 미뤄졌다가 지난 25일에야 뒤늦게 열렸다. 수상식 참석을 위해 멀리 인도에서 한국을 찾은 로이를 만났다. 그는 “인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글을 쓰는 사람인데, 지난 2년 고립의 시기에 미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힘들었다”며 “한국을 찾게 되면서 고립이 끝나는 계기가 됐다. 우리가 다시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해야 할 때”라고 소회를 밝혔다. 다음은 서울 프레스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 및 서울 은평구 한문화체험관에서 이뤄진 인터뷰, 그의 작품 등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작은 것들의 신』은 이란성 쌍둥이 남매인 에스타와 라헬이 거대한 전통과 관습, 권력과 인간들의 욕망에 의해 좌절된 어머니 암무의 삶과 사랑을 회고하는 형식의 작품이다. 알코올 중독자인 차농장 지배인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암무는 쌍둥이 남매를 데리고 고향 케랄라 아예메넴으로 돌아온다. 암무는 불가촉천민인 목수 벨루타와 사랑에 빠지지만, 거대한 것들에 의해 짓이겨지고 만다. 벨루타는 누명을 쓰고 경찰의 구타로 숨지고, 암무 역시 마을을 떠난 뒤 쓸쓸히 죽는다. 거대한 전통과 관습 속에서 미래가 없던 암무와 벨루타의 유일한 희망은 거미 같은 작은 것들이었으니.

 

“더 나중에도, 이날 이후 이어진 열세 번의 밤 동안에도, 본능적으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 ‘큰 것들’은 안에 도사리고 있지도 않았다. 자신들에게는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다. 미래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작은 것들에 집착했다…그들은 덧없는 것을 믿어야만 함을 알았기에 거미를 선택했다. ‘작음’에 집착해야만 함을. 헤어질 때마다 서로에게 단 하나의 작은 약속을 얻어낼 뿐이었다. ‘내일?’‘내일.’그들은 하루 만에 모든 것이 바뀔 수도 있음을 알았다. 그 점에서는 그들이 옳았다.”(461-462쪽)

―『작은 것들의 신』의 쌍둥이 딸 라헬과 그의 어머니 암무의 삶은 실제의 삶과 가공의 상상이 절묘하게 버무려져 있는 것 같은데.

 

“두 종류의 액체를 섞어서 칵테일을 만들 때 우리는 특정 액체를 잘라서 무어라 말하기 어렵듯이, 어떤 것이 기억이고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제가 나고 자랐던 경험을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실제와 상상을 명확하기 구분하긴 어렵다.”

 

―왜 작은 것들에 주목했는가, 작은 것들도 찬찬히 들여다보면 큰 얘기 같다.

 

“많은 종교에는 작은 것들의 신이 다 존재한다. 작은 것들은 작은 것이 아닐 수 있고, 가장 큰 것과 연결될 수도 있다. 거미 한 마리가 물결을 일으켜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것과 같다. 큰 것이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작은 것이 모여서 큰 것이 구성되는 것인지 모른다. 저는 건축학을 전공해서 더 그럴 지도 모르는데, 글을 쓸 때 어떤 문제에 대해서 개념적으로만 바라보지는 않는다. 아주 작은 것을 바라보려고 하고, 신은 작은 것들 속에 있다는 말도 있다. 작은 것들이 신들과 연결될 수 있다는, 작품이 제목이 다 말해줄 수 있다.”

 

―1960년대 후반 인도를 배경으로 했는데, 독자와 무엇을 교감하고 싶었는지.

 

“나는 좋은 소설이 메시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소설은 하나의 선전이나 단일한 주제가 결코 아니다. 소설은 우주를 구축하는 것이다. 소설은 나에게 대한 것이고, 우주에 대해 말하는 것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소설은 가장 복잡한 것을 가장 간단하게 표현하는 양식이다. 모든 메시지는 결국 책 안에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적 신념이 공존하는 사회였지만, 가부장적 질서가 공고했고 계급 갈등도 심했던, 1960대에는 공산주의 세력이 의외로 강했던 케랄라. 캘커타 출신의 벵골 힌두교도로, 실롱 근처의 차농장 매니저로 일한 알코올 중독자인 아버지. 그리고 케랄라 출신의 시리아 정교도 신도로 여성들도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권리를 달라고 투쟁했던 여성 인권 운동가이자 페미니스트 어머니. 어머니는 그에게 “어떤 짓을 해도 좋지만, 결혼만은 하지 마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했다.

 

로이는 1961년 인도 메갈라야주 실롱(Shillong)에서 태어났지만, 부모의 이혼으로 외가인 남부 케랄라주 아예메넴에서 자랐다. 그는 학교 공부를 강요하지 않았던 어머니 덕분에 10세가 될 때까지 집에서 책을 읽으며 보낼 수 있었고, 1971년이 돼서야 기숙학교에 입학했다.

 

1977년, 그는 델리로 이주해 건축설계학교에 입학했다. 건축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 학교에 다닐 수 있을 거라는 기대와, 영국 태생인 인도 건축가 로리 베이커처럼 지속 가능한 저비용 건축을 하겠다는 이상을 품고서.

 

이듬해 한 건축가를 만나서 결혼했다가 4년 만에 이혼한 그는, 1984년 국립도시계획연구소에 취직했다. 그는 그곳에서 영화감독 프라디프 크리셴(Pradip Krishen)을 만났고, 크리센과 함께 건축학교 시절을 소재로 여주인공으로 분한 영화 「매시 사히브(Massey Sahib)」를 찍었다. 그는 크리셴과 결혼한 이후 영화 「애니」, 「전기 달」, TV 시리즈 「바르가드」 등을 공동 작업했다.

 

로이는 1997년 첫 소설 『작은 것들의 신』으로 그해 부커상을 수상하며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발돋움했다. 미국의 『뉴욕타임즈』는 작품에 대해 “눈부신 첫 소설(a dazzling first novel)” “비범한, 도덕적으로 고단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상찬했다.

 

―어떻게 문학의 세계에 들어왔고, 작가의 길에 들어선 것인가.

 

“건축설계를 공부했고, 이어서 영화일을 했다. 특히 두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고, 그 중 하나(「In which Annie Give It That Ones」, 1989)는 최우수 각본상을 받기도 했다. 건축설계와 영화를 공부했지만, 나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는 만족할 수 없었다. 나는 혼자서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글쓰기를 시작하고 책을 구상하고 4년간 글을 썼다.”

 

출판사의 주선으로 1년여 세계 여행을 다녀온 그는, 1998년 인도 정부의 핵실험을 통렬하게 비판한 첫 평론 「상상력의 종말」을 발표하며 사회운동가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평론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자부심 폭발’, ‘부활에 이르는 길’, ‘뿌듯한 순간’. 핵실험 뒤 며칠 동안 신문을 장식한 제목들이다…이것은 단순한 핵실험이 아니다. 민주주의 실험이다.’ 이런 소리가 곳곳에서 틀린다. 끊임없이 울려퍼진 소리. 핵폭탄은 인도다. 인도가 핵폭탄이다. 그냥 인도가 아니라 힌두교의 인도다. 경고하건대, 핵실험을 비판하는 것은 반국가적 행위일 뿐 아니라 반힌두교적 만행이다…이것은 핵보유국이 누리는 예상밖의 소득이다. 정부는 핵폭탄을 가지고 적을 위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국민에게 전쟁을 선포할 수도 있다. 우리 말이다.”(노승영 역, 2014,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서울: 시대의창, 27쪽 재인용)

 

평론 속의 ‘우리’는 아마 힌두교 주류 집단에 속하지 않는, 또는 속하기를 거부하는 사람쯤 될 터다.

 

그는 이후 인권 옹호가이자 환경 운동가, 정치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긴급한 개입’을 위해 다양한 논픽션을 써왔다. 『생존의 비용』(1999)을 시작으로 『보통 사람들을 위한 제국 가이드』(2004),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2009),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2014), 『아자디: 자유, 독재, 허구』(2020) 등을 펴내며 인도 사회와 세계를 향해 거침없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인도 정부의 핵실험과 대형댐 건설, 힌두 극단주의, 정치적 부패 등의 비판부터 카슈미르 독립의 공공연한 지지까지, 나아가 미국의 일방통행도. 그에겐 ‘반민족적’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음에도.

 

“평론은 모두 인도 역사의 중대 국면에 긴급히 개입하기 위해 썼다. 평론은 대개 사건에 대한 대응이었으니, 대응에 대한 대응인 경우도 있었다. 도저히 침묵을 지킬 수 없어 분노를 담아 쓴 것이 태반이지만, 이들 평론에는 공통점이 있다. 평론은 민주적 과정에서 불거진 안타까운 예외나 일탈이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결과와 부산물을 다룬다. 환기구에 불이 났다고 할까. 이 책은 원경을 조망하기보다는 구체적 사건들을 밑바닥에서 올려다본다.”(노승영 역, 2014, 『아룬다티 로이, 우리가 모르는 인도 그리고 세계』, 서울: 시대의창, 18쪽)

 

―시대의 목격자로서의 문학의 역할은 무엇인지(이와 관련, 그는 ‘긴급한 개입’을 위해 논픽션을 쓴다고 했다).

 

“저는 픽션과 논픽션의 구분에 대해 말하고 싶다. 픽션과 논픽션은 제가 실천하는 문학의 두 가지 형태이다. 제가 존경하는 작가 존 버즈는 픽션과 논픽션의 두 다리로 걷는다고 말한 바 있다. 논픽션은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글쓰기이고, 픽션은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글쓰기이다. 최근에 저의 에세이 『아자디』라고 하는 에세이집이 있는데, 아자디는 힌두어로‘자유’라는 뜻이다. 아자디라고 하면 뭐가 떠오르느냐고 물어봐서 픽션이라고 답했다. 왜냐하면 픽션은 제가 더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보고서나 역사책에서 담기지 않는 내용, 흔히 말하는 중요하지 않는 내용까지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인도 정부군은 카슈미르를 점령하고 있다. 정부군의 폭력의 수준과 점령의 밀도를 보면 끔찍한 수준인데, 카슈미르 점령 상태를 겪고 있는 주민과 겉으로는 민주 국가라고 하는 정부 사이에는 몇 명이 죽었고 살았는지 사망자 수로 다 설명할 순 없다. 수많은 스토리로 이를 담아낼 수 있는 것이 픽션이다. 논픽션은 정치적이고 픽션은 예술적이라는 이분법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픽션과 논픽션의 쓰는 방법이 다르고, 몸의 느낌 등에선 차이가 있지만, 두 가지를 쓰는 저는 같은 사람이다. 정치라는 것은 정당, 선거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픽션을 쓰든 논픽션을 쓰든 정치와 떼놓을 수 없다. 픽션을 쓸 때도 한 문장을 쓸 때마다, 인물을 창조할 때마다 끊임없이 선택을 해야 한다. 소설은 복잡한 것을 가장 간단하게 말하는 방법이다. 이보다 더 간단하게 말하기 어렵고, 이보다 더 비정치화하기 어렵다. 소설들을 읽고 여러 해석을 하게 되는데, 그 속에서 우리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더 이상 숨길 수 없이 다 드러낼 수 있다. (소설과 논픽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쓰는 주제나 대상이 다른 것이 아니고, 형식적인 차이이다. 논픽션도 문학적일 수도 있고, 반대로 소설 역시 문학적이 아닐 수도 있다. 논픽션과 픽션을 구분 짓는데, 특별히 큰 차이가 없고 형식적 차이가 있을 뿐이다. 논픽션은 주장이고, 소설은 세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논픽션은 사실이고, 소설은 상상적인 것이라고만 생각하지만, 어떤 면에선 소설이야말로 진실을 말하는 가장 최상의 형식이다.”

 

이와 관련, 그는 라난재단 주최로 2002년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페에서 행한 유명한 강연 「9월이여, 오라」에서도 “논픽션과 픽션은 이야기를 전하는 기법의 차이일 뿐이다. 내가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픽션은 내게서 춤추듯 흘러나오고, 논픽션은 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 맞이하는 이 고통스럽고 깨진 세계가 비틀어 짜듯이 내보낸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언젠가 영국의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자신은 이야기꾼이며, 소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나에게 소설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그것이 근본적인 나다. 나는 이야기꾼이다. 나에겐 그것이 세상을, 세상사의 모든 춤들을 이해하는 유일한 방식이다.”(민승남, 2020, 「옮긴이의 말」, 『지복의 성자』, 문학동네, 582쪽 재인용)

 

2017년, 로이는 20년만에 두 번째 장편소설 『지복의 성자들(The Ministry of Utmost Happiness)』을 출간했다. 작품은 성별이 모호한 성소수자의 시각으로 2002년 힌두교들이 수천명의 무슬림을 학살한 구자라트 폭동을 다루면서 종교 갈등과 역사적 분열, 빈부 격차, 카스트 제도 등 인도 역사의 핵심적 문제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그는 작품에 대해 “『작은 것들의 신』은 가족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지복의 성자들』은) 가족은 무엇인지, 젠더가 무엇인지, 국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에 “조금 더 복잡하고 읽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지복의 성자들』은 이렇게 끝맺는다.

 

“그들(암줌과 미스 우다야 제빈)이 묘지로 돌아왔을 때는 모든 불이 꺼지고 모두가 잠든 후였다. 모두라 함은 쇠똥구리 귀 키욤은 제외한 것이었다. 그는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근무를 서고 있었다. 혹시 하늘이 무너지면 세상을 구하기 위해, 바닥에 등을 대고 누워 공중으로 다리를 뻗은 채로. 하지만 그조차도 결국엔 모든 게 다 괜찮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렇게 될 것이다. 그래야만 하니까. 왜냐하면 미스 제빈, 미스 우다야 제빈이 왔으니까.”(573쪽)

 

작가이자 활동가인 로이는 라난재단의 문화자유상, 시드니평화상, 노먼 메일러 집필상, 오웰상 등을 수상했고, 2014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자신의 글쓰기의 특징,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든 작가들이 자기만의 스타일, 유니크한 글쓰기를 갖기를 원한다. 나 역시 찾고 있고, 여전히 어렵다고 느끼는 부문이다. 나만의 언어를 갖는 것은 몸 안의 피가 편하게 흐르는 것으로, 나의 몸으로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언어와 사고 사이의 갭을 줄이는 것이고, 갭을 줄일수록 나의 몸이 편안해진다.”

―코로나 팬데믹의 시대,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문학이 위로만 하려고 존재하는 건 아니다. 제가 작가로서 작업하는 맥락은 오히려 사람이 불편하게 만들고, 어떤 사람들의 편안함을 흔들어놓는 것이 목적이다.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먼저 던질 필요가 있다. 픽션을 쓰면 문학이라고 하지만, 제가 논픽션을 쓰면 많은 사람들(주로 남성들)이 작가가 이런 문제에 대해 글을 쓸 권리가 있느냐고 질문을 던지곤 한다. 문학의 의미에 대해 의문이 있다. 인도에선 시민들이 정부의 조치에 대해 잘 복종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다. 비자신청을 위해서 제 몸에 대해 여러 치매가 발생하는, 제 몸이 아닌 것 같은 경험을 해야 하기도 했다. 어찌 보면 문학은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을 이해하는 돕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한다. 문학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문학은 통합의 무기이지 분열의 무기가 아니다. 또한 문학은 국경을 무너뜨리는 무기이지, 더 높이 세우는 무기가 아니다. 어디든 삶에 깊이 천착하면 공통의 인간성을 발견하게 된다. 한국에 와서 대화를 나누는 중에 요즘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들었다. 우린 이런 이야기를 백 년째하고 있다. 알고리듬이든 AI든 문학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문학은 사람들의 스토리텔링이다. 국지적인 것이든 세계적인 것인지 스토리텔링을 대체할 수 없다.”

 

그는 수상소감에서도 “펜데믹은 그저 단순한 질병이 아니라 사회적 질병이며 인간사회의 심각한 불의의 단층, 지구를 위협하는 인간이라는 종의 근원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엑스레이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루 일상은 어떤지.

 

“현재 나는 습관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루틴이 없는 일상을 살고 있다. 어떤 날은 여행하기도 하고, 고릴라도 보고 다니는 등 매일이 다른 날이다. 루틴이라고 하면, 항상 뭔가를 생각하고 무엇을 할지 생각하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한국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나는 직관에 의존해 글을 쓴다기보다는 매우 훈련된 작가(disciplined writer)에 가깝다”며 “듣고, 관찰하고, 걷고, 사람들에게 말을 걸며 현실을 다른 관점으로 보려고 노력한다. 이곳 인도는 다양한 언어의 바다에서 헤엄칠 수 있는 곳이라서 매일 보고 듣는 것을 통역하는 일이 내 창작의 첫걸음”이라고 말했다(이세아, 2020.11.11).

 

―10년 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인도의 상황이 너무 심각하기 때문에 10년 뒤의 나의 모습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아마도 감옥에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나의 친구들이 현재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이 끔직한 정부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 끔직한 일들이 계속될까, 이런 것을 생각하지 10년 뒤 나의 모습을 생각하긴 지금 어렵다.”

 

그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도 자신이 독립을 지지한 인도령 카슈미르가 겪고 있는 어려운 상황을 거론하면서 아직 세 번째 소설을 집필할 계획이 없다고 고백했다. “소설을 쓰기 위해선 어떤 새로운 세계가 머릿속에 자라나야 하는데, 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현재는 어렵다”며.

 

세 번째 소설을 아직 집필할 계획을 세울 수 없다는 작가, 10년 뒤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어렵다는 로이. 인도와 세상은 아직도 그의 ‘긴급한 개입’을 요구하고 있는데. 끝도 없이. 그는 언제쯤 다시 소설의 세계로, 그리하여 10년 뒤의 모습을 스스로 그릴 수 있을까. 몇 조각의 슬픔을 담아서, 나는 자판을 꾹꾹 누른다.


글·사진=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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