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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탄생 101주년… 유엔사 “조국 위한 헌신 오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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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6 06:00:00 수정 : 2021-11-25 20:24:05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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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서 보여준 리더십, 영원히 못 잊어”
정작 한국인들은 故人에 무관심한데… ‘씁쓸’
유엔군사령부 및 주한미군 사령부가 있는 경기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자리한 ‘백선엽 강당’의 모습. 트위터 캡처

유엔군사령부가 고(故) 백선엽 장군의 101번째 생일을 기리며 6·25전쟁 당시 고인의 리더십을 조명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백 장군은 1920년 11월 23일 평남 강서에서 태어나 지난해 7월 10일 100세를 일기로 타계했으며, 23일은 고인의 탄생 10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정작 한국인들은 별다른 감흥 없이 그날을 보냈는데 유엔사는 고인의 생일까지 각별히 챙기는 모습에서 백 장군의 공로가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된다.

 

25일 유엔사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보면 “오늘(11월 23일)은 백선엽 장군이 태어난지 101주년 되는 날”이란 글과 함께 백 장군의 사진이 여러 장 게시돼 있다. 유엔사는 “이제는 고인이 되셨지만 6·25전쟁 당시 보여주신 리더십과 정전협상 참여, 조국을 위한 일생의 헌신과 끝없는 전우애는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라고 고인을 추모했다.

 

백 장군은 6·25전쟁 초반인 1950년 8월 북괴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둔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당시는 한국군과 유엔군이 낙동강 방어선 안에 갇혀 있던 때였다. 만약 다부동마저 북괴군에 뚫린다면 대구는 물론 부산까지도 적(敵)의 수중에 넘어갈 수 있는 다급한 상황이었다.

 

별 하나 준장 계급장을 달고 육군 1사단장으로 복무하던 백 장군은 다부동에서 사실상 배수의 진을 치고 북괴군의 진격을 가까스로 막아냈다. 패배한 북괴군은 전차(탱크) 30대가 부서지고 사상자 1만7000여명이 발생했다. 한국군에 사살된 북괴군 시체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거기서 흘러나온 피가 강물을 이뤘다는 목격담이 전해진다.

 

유엔군사령부가 고(故) 백선엽 장군의 생일인 11월 23일에 맞춰 SNS에 올린 게시물. 트위터 캡처

이후 백 장군은 한국군은 물론 미군 등 유엔군 사이에서도 ‘전쟁영웅’으로 통하며 6·25전쟁 내내 큰 활약을 했다. 한국군 최초로 별 넷 4성장군(대장)에 올랐으며 육군참모총장(1952년 7월∼1954년 2월)과 오늘날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연합참모회의 의장(1959년 2월∼1960년 5월)을 지냈다. 전역 후에는 주(駐)대만, 주프랑스, 주캐나다 대사를 차례로 역임하는 등 외교관으로 변신했으며 박정희정부 시절 교통부 장관(1969∼1971년)으로 입각하기도 했다.

 

고인은 일제가 만주를 점령해 다스리던 시절 그곳의 봉천군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관동군에서 복무해 ‘친일파’라는 비판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 현대사에 밝은 전문가들은 “모든 인물은 공(功)과 과(過)가 있기 마련”이라며 “고인의 경우 일제강점기 일본 군대에 투신한 과오보다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공산주의로부터 구한 공로가 더 크다”고 말한다.

 

올해 7월 2일 취임한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은 한국에서의 첫번째 공식 일정으로 7월 9일 칠곡에서 열린 백 장군 1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택했다. 러캐머라 사령관은 추모사에서 “(한국 부임 후) 첫 공식 외부 행사로 백선엽 장군 1주기 추모행사에 참석하게 돼 무척 뜻깊다”며 “고인이 한평생 흘린 피와 땀으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 모였다”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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