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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엽의고전나들이] 나의 집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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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5 22:48:24 수정 : 2021-11-25 22:4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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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시인 이달은 불행하게도 서얼이었다. 당대 최고의 시인으로 공인받기에 충분했으나 남다른 처지는 그를 한자리에 머물게 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여기저기 떠돌았는데, 서울을 떠돌 때의 심정을 담은 시가 있다. “서울 와서 나그네로 떠도는 손아(京洛旅遊客) / 구름 낀 산 어느 곳이 그대 집인가?(雲山何處家) / 성긴 연기 대숲 길에 피어오르고(疎煙生竹逕) / 가랑비에 등꽃들이 지는 곳일세(細雨落藤花).”(‘윤서중 운을 따라 짓다(次尹恕中韻)’, 송준호 역) 그렇게 짧고 깊게 자신의 심경을 밝혀두었다.

앞의 두 구와 뒤의 두 구가 문답형으로 구성돼 있는데 사실은 자문자답이다. 객지생활이 본디 힘겨운 법이지만 서울살이라면 더욱 그렇다. 사람들은 많은데 아는 사람은 적고, 휘황찬란한 곳에서 초라함이 더욱 커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그럴듯한 고향이라도 있다면 다행이겠는데 시인의 처지가 영 그렇질 못하다. 그래서 저 멀리 구름 낀 산을 보며 자답을 한다. “내 집은 말이요~” 하며 설명을 하는데, 가만 보면 어느 고을에나 있을 법한 풍경이다.

어쩌면 서울을 떠나서도 딱히 집이라고 할 곳이 없어서 그렇게 답했는지도 모르겠지만, 집이 어디인가를 설명하며 ‘성긴 안개’, ‘대숲 길’, ‘가랑비’, ‘등꽃’을 들고나온 점은 부러운 대목이다. 스스로를 애처롭게 여겨 위무하는 느낌이 분명해서 딱한 처지에 공감을 하기는 해도, 요즘 우리의 삶이 그런 풍경과는 영 멀리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사는 곳을 설명할 때면 무슨 동 어느 대형빌딩 옆이라거나, 아무 아파트단지 등 인위적이며 계량화된 잣대를 쓰곤 한다. 심지어 평수가 어떻고 시세가 얼마인 집이라며 묻지도 않은 말까지 주워섬길 때도 있다.

그러나 아파트 벤치 위로 그늘을 드리운 등나무의 꽃이 붉은빛인지 보랏빛인지 살필 새도 없이 바삐만 지내다 보면, 너나없이 떠돌이 신세를 면할 길이 없을 듯하다. 한곳에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언젠가 지금 사는 곳이 그리울 법한 풍경 한 컷이 가슴에 남겨지지 않는다면 그처럼 쓸쓸한 게 또 없을 성싶다. 혹시 제 집을 소개하면서 이런 말 한마디 나오길 기대한다면 너무 철이 없는 탓일까? “정동향이라 아침 햇살이 그만이고요, 길 건너 교회 첨탑 위로 보름달이 볼 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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