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필요한 순간 현장에 없어
경찰이 지켜줄거란 신뢰 흔들려”
전국 경찰서에 강력대응 주문
‘스토킹은 개인 간 다툼’ 인식에
‘좋게좋게 해결하라’식 사건처리
경찰, 신고건 10%만 정식수사
“스토킹 해석 모호해 문제” 토로

김창룡 경찰청장이 전국 경찰서에 서한을 보내 “국민 위협 행위에 물리력을 과감히 행사하라”고 주문했다. 최근 경찰로부터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이 스토킹을 하던 남성으로부터 살해되고, 인천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에서 경찰의 부실대응이 도마에 오르는 등 경찰에 대한 질타가 커지자 현장에서 보다 강력한 대응을 하라고 강조한 것이다.
김 청장은 24일 전국 경찰서에 서한을 보내 “엄중하고 절박한 심정으로 동료 여러분께 호소드린다. 그 어느때보다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밝혔다. 그는 “두 사건(신변보호 여성 피살 사건, 인천 흉기난동 사건) 모두 국민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 경찰이 현장에 있지 못했다. 엄중한 위기 상황”이라며 “‘어떤 순간에도 경찰이 지켜줄 것이다’란 국민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변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권총과 테이저건 등 무기 장구의 사용·활용이 자연스럽게 손에 익도록 필요한 장비와 예산을 확대해 반복적으로 훈련하게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장에서 당당히 법을 집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확충하는 데 심혈을 기울이겠다”며 “소신을 가지고 임한 행위로 발생한 문제는 개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힘껏 보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잇따라 일어난 두 사건으로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상황이다. 특히 주로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스토킹 사건의 경우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경찰이 ‘좋게좋게 해결하라’고 권고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형사정책학회 학술지 ‘형사정책’에 게재된 논문 ‘스토킹 신고에 대한 경찰의 대응: 112 신고자료 분석’에 따르면 2019년 7∼12월 112 신고처리시스템에 입력된 스토킹 관련 신고 2836건 중 형사적 대응이 검토된 신고는 12.7%에 불과했다. 신고 10건 중 6건(60.4%)은 경찰이 사건을 현장에서 종결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시점은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전이지만, 피의자에게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이나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을 적용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피의자를 설득해 귀가하도록 하거나 계도하는 등 현장에서 마무리됐다.
논문을 작성한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밀한 관계일 경우 경찰은 개인 간에 해결할 분쟁이라고 보고 비형사적 방식으로 종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며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됐지만 경찰이 입법 취지를 이해하고 사건처리에 적극 적용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실제 스토킹처벌법 시행된 지난달 21일부터 한 달간 접수된 스토킹 신고(3314건) 중 정식 수사 착수 비율은 10% 미만(277건)으로 나타났다. 스토킹 피해자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가 ‘가해자가 밤길에 따라오거나 직접 위해를 가하면 그때 다시 신고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현장 경찰들은 스토킹 범죄가 반의사불벌죄인 데다 현행법에 정의된 스토킹 행위에 대한 해석이 모호한 탓에 판단이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서울 일선 경찰서 관계자는 “현장에 나가보면 피해자가 ‘이 상황만 벗어나게 해달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강제력을 행사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경찰도 “스토킹 범죄 성립 요건 중 ‘정당한 이유 없이’란 말이 있는데 경찰이 적극 해석하기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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