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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신고해도 ‘좋게좋게’… 신고 10%만 정식수사

입력 : 2021-11-24 18:49:43 수정 : 2021-11-24 18:4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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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정책 게재 논문 ‘경찰의 대응’ 보니

주로 연인 등 친밀한 관계서 발생
‘좋게좋게 해결하라’식 사건 처리
전체 신고 10건 중 6건 현장종결

“위해 가하면 다시 신고하라 말해”
피해자들 경찰 부적절 대응 지적
“스토킹 해석 모호… 판단 어려워”
경찰은 강제력 행사에 한계 토로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경찰에 수차례 스토킹 피해를 호소하고 신변보호까지 받던 여성이 끝내 살해되는 등 반복되는 비극을 막지 못한 데에는 스토킹 범죄에 대한 경찰의 안이한 인식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로 연인 등 친밀한 관계에서 벌어지는 스토킹 범죄의 특성상 경찰에 신고한다고 해도 적극적인 대처보다는 ‘좋게좋게’ 해결하라는 식의 비형사적 방식으로 사건이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24일 한국형사정책학회 학술지 ‘형사정책’에 게재된 논문 ‘스토킹 신고에 대한 경찰의 대응: 112 신고자료 분석’에 따르면 2019년 7월부터 12월까지 112 신고처리시스템에 입력된 스토킹 관련 신고자료 2836건 중 형사적 대응이 검토됐던 신고는 전체의 12.7%에 불과했다. 여기에는 신고내용에 대해 상세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관할 부서로 인계하는 등 ‘계속 조사’(6.6%)와 임의동행·체포 등 ‘검거처리’(6.1%)가 포함됐다.

신고 10건 중 6건(60.4%)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사건을 현장에서 종결했다.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전에도 경범죄처벌법상 지속적 괴롭힘이나 정보통신망법 위반 등을 적용해 가해자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해 추가 조사하거나 범칙금 통고처분을 하는 등 형사적 대응 방식이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사건이 가해자를 설득해 귀가하도록 하거나 계도하는 등 현장에서 마무리됐다는 의미다.

논문을 작성한 한민경 경찰대 교수는 “분석 결과 가해자와 피해자가 친밀한 관계일 경우 경찰관들은 경찰의 개입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여기기보다 개인 간에 잘 해결할 분쟁이나 다툼이라고 보고 비형사적 방식으로 종결하는 경향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한 교수는 이어 “스토킹처벌법이 제정됐음에도 현장 경찰관들이 그 입법 취지를 이해하고 사건처리에 적극 적용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실제 스토킹처벌법 시행 이후 접수된 스토킹 피해 신고 중 정식 수사에 착수한 비율은 10% 미만이다. 법이 시행된 지난달 21일부터 한 달간 접수된 피해 신고는 총 3314건이었고, 이 중 범죄가 인정돼 입건된 사례는 277건(지난 17일 기준)이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진행한 ‘스토킹 피해 경험 및 관련 제도 개선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57.5%가 ‘대응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 스토킹 피해에 대응하기 어려웠다고 답했다. 스토킹을 신고했다가 수사기관에서 부적절한 대응이나 2차 피해를 경험했다는 응답도 나왔다. 스토킹 피해자 A씨는 “경찰에 신고했다가 ‘가해자가 다시 밤길에 따라오거나 직접 위해를 가하면 그때 다시 신고하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최근 숨진 피해자 역시 주변 지인들에게 ‘경찰이 자꾸 증거를 달라고 한다. 증거가 없어 움직이지 않는 것 같다’고 토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 경찰들은 스토킹 범죄가 반의사불벌죄인 데다 현행법에 정의된 스토킹 행위에 대한 해석이 모호한 탓에 판단이 쉽지 않다고 말한다. 서울 일선 경찰서 관계자 B씨는 “현장에 나가보면 피해자들이 ‘분리만 해달라’거나 ‘이 상황만 벗어나게 해달라’는 식의 요구를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경찰이 강제력을 행사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만큼 그런 부분들도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서울 일선 경찰서의 한 경찰도 “전형적인 스토킹 범죄가 아닌 층간소음 등의 이유로 자꾸 찾아온다거나 하는 등은 판단이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범죄 성립 요건 중 ‘정당한 이유 없이’라는 말이 있는데 정당성에 대한 판단도 각자의 주장에 따라 다르고, 경찰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해석하기 부담스러운 것도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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