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은 기업과 사회를 바꾸는 힘 지녀
전기차 이후, 차 디자인 자유도 높아져
디자인은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해야 창조 나와”

“전기차 덕분에 자동차 디자인에도 변화의 가능성이 열렸다.”
세계적 자동차 디자이너인 피터 슈라이어(68) 현대차그룹 디자인경영담당 사장은 24일 서울 강남구 파크하얏트 서울호텔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지난달 독일에서 슈라이어 사장의 삶과 디자인 철학을 조명한 책이 출간됐고, 국내에는 이달 ‘디자인 너머’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현대차그룹의 독자적인 디자인을 창조한 인물로 평가받는 그는 미래차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차의 운영방식도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전기차나 자율주행 같은 기술은 구동 방식, 내장 디자인 등 차의 운영방식을 크게 바꿀 것”이라며 “차의 다양성을 부여하고, 차 개발에 있어 디자인이 더 중요한 요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평소 즐겨입는 검은색 옷과 뿔테 안경을 쓰고 인터뷰에 나선 그는 디자인이 기업과 사회를 바꾸는 힘을 지녔다고 했다. 슈라이어 사장은 “많은 사람이 차 디자인을 외부 모습을 바꾸는 정도로 생각하는데 디자인은 외형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며 “디자인은 기업을 바꾸고, 브랜드의 인식을 제고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아우디·폴크스바겐에서 디자인 총괄을 담당하며 독일 3대 차 디자이너로 꼽히던 그는 2006년 기아로 옮겨왔다. 이후 쏘울, K5, 스팅어 등 다양한 차량 디자인을 지휘하며 동서양의 문화를 담은 디자인으로 유명해졌다. 그는 한국 디자인 특징에 대해 “독일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한국은 혁신을 추구하고 빠르게 전진하려는 특성이 있다”고 비교했다.
자동차 평론가 사이에서 현대차는 내장 디자인을 잘 만들기로 유명하다. 이에 대해 슈라이어 사장은 “차는 두 번째 집”이라며 “사람들은 보통 처음에는 차의 외장을 보고 구매하지만 이후에는 실내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내장은 몸에 잘 맞는 정장이나 장갑처럼 편안해야 한다. 아침에 차에 탔을 때 고객이 긍정적인 경험과 기분을 느끼길 바라며 디자인한다”고 했다.

슈라이어 사장을 영입한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당시 기아 대표)에 대한 디자이너의 속내도 털어놨다 “정 회장은 디자이너에게 시간적 자유를 많이 허락해 주는 동시에 많은 도전 과제를 준다”며 “나에게는 멘토처럼 지지해주면서도 새로운 변화 추구에 아주 많은 흥미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 디자이너를 꿈꾸는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며 “디자이너는 다방면으로 압박을 받는데, 이때 유연한 사고와 자유로운 생각이 새로운 디자인을 창조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진지하게 디자인하고, 창조를 위한 창조나 창의력보다 합리적 디자인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독일에서 한국에 이르기까지 긴 디자인 여정을 이어온 그는 “이번 책 출간을 계기로 삶을 돌아보니, 우연에 의해서 결정된 부분이 많았다”며 “삶의 교차로에서 선택에 따라 달라진 점들이 많았다. 그 기회를 인지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슈라이어 사장은 인터뷰 도중 통역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책 디자인에 나온 미래 콘셉트카를 따라 그리고 있었다. 그 모습은 칠순을 앞둔 경영자가 아닌 영락없는 현역 디자이너였다.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