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은 ‘레임덕’… “방역 리더십 재건 필요”

‘위드 코로나’를 선언한 유럽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무섭게 재확산하는 가운데 그중에서도 상황이 가장 심각한 독일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섰다. 세계의 모범 방역국 이미지가 무색해짐은 물론 퇴임을 앞둔 앙겔라 메르켈 총리한테도 임기 중의 ‘오점’으로 남을 전망이다.
24일 국제 통계 사이트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독일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이날까지 10만16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미국, 브라질, 인도, 멕시코, 러시아, 페루, 영국,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이란, 콜롬비아, 프랑스, 아르헨티나에 이어 14번째로 많은 숫자에 해당한다.
독일은 최근 일일 신규 확진자 수가 급격히 증가하며 위중·중증환자 치료를 위한 의료 시스템이 흔들리고, 그에 따라 신규 사망자도 덩달아 늘어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독일의 하루 신규 확진자는 △19일 5만9266명 △20일 4만8245명 △21일 3만6860명 △22일 4만489명 △23일 5만4268명으로 3만명선에서 무려 6만명선까지 오르내리고 있다. 이 정도면 유럽은 물론 세계에서도 확산 속도가 가장 축에 든다.
신규 확진자 급증에 따른 의료체계 과부하는 고스란히 사망자 증가로 이어진다.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이래 독일에선 일일 사망자가 100명을 넘은 날이 많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들어선 △19일 230명 △20일 154명 △21일 60명 △22일 204명△23일 343명 등 하루 사망자가 200명은 물론 300명까지 훌쩍 넘기고 있다.
독일은 한때 유럽에서 가장 모범적인 방역정책을 펼치며 확진자 및 사망자 발생을 최대한 억지했다. 유럽에서 인구가 제일 많은 나라임에도 확진자 및 사망자 수는 이웃의 프랑스나 영국보다 적은 편이다. 이는 메르켈 총리의 높은 인기를 뒷받침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메르켈 총리는 독일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 수가 8만명을 넘어선 지난 4월 18일 대대적인 추모 행사를 열었다.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연방 대통령이 직접 애도식에 참석해 “코로나19 사망자들을 그리워하고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백신 접종 등에 힘입어 코로나19 사망자가 더는 늘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도 어느 정도 반영됐던 게 사실이다. “코로나19로 독일에서 8만명이나 되는 사망자가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다”는 메르켈 총리의 발언 역시 이런 자신감의 연장선상에서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정확히 7개월 만에 사망자가 2만명이 더 늘어 누적 10만명을 넘어서자 독일 사회는 술렁이는 모습이다. ‘위드 코로나’ 분위기에 휩쓸려 전보다 방역을 게을리 한 것도 여러 이유 중 하나이지만, 연방 하원의원 총선거 이후 정권교체기라는 점이 정부의 코로나19 대응을 보다 느슨하게 만든 요인이란 지적이 제기된다. 사민당(SPD) 중심의 새 연립정부 출범을 앞둔 상황에서 퇴임 날짜만 기다리는 메르켈 총리가 방역정책의 전면에 나서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일각에선 이미 레임덕에 빠진 메르켈 내각을 대신해 곧 구성될 새 연립정부가 하루빨리 리더십을 행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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