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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상을 잘 보여준 드라마 ‘완장’은 많은 사람에게 지금도 회자가 되는 명작이다. 난폭과 능청을 넘나들며 주변 환경에 의해 변화되는 인물을 디테일하게 잘 풀어 낸 탤런트 조형기의 연기도 완벽했지만, 윤흥길 원작 소설로 내용 또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동네 망나니 짓을 일삼는 임종술(조형기분)은 어느 날 동네 저수지 관리인이 되며 그 표시로 완장을 차게 된다. 책임과 함께 권한을 부여받은 종술의 완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권력으로 바뀐다. 저수지로 낚시 온 사람을 폭행하고 이유 없이 낚시질을 금지시키고 읍내 나갈 때도 완장을 차고 으스대며 자아도취에 빠진다. 결국 본분을 망각한 그의 도가 넘치는 행동은 자신과 주위 사람을 불행하게 만들고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특별하게 부여받은 권한은 권력이 아니라 책임감이다. 완장은 중요한 임무를 부여받았다는 공공연한 표시이며 완장을 차는 순간 많은 사람이 주시하게 된다. 그래서 완장을 찬 사람은 자신한테 엄격해야 하고 스스로 제대로 일을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살펴봐야 하고 희생과 봉사정신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어찌 보면 완장을 찬다는 건 외로운 일인지 모른다. 학창 시절 누구나 한번쯤 주번을 해봤을 것이다. 주번이란 완장을 차면 떠드는 아이도 잡아내고 청소도 솔선수범해야 한다. 주번은 체육 시간 땡볕에 나가 체육을 안 해도 된다. 교실에서 반 친구들의 중요 소지품을 지켜야 한다. 소지품을 안전하게 지켜 내야 하는 책임감을 무시하고 땡볕에서 운동하는 친구들을 창문으로 내다보며 자신의 위치에 우쭐대며 기쁨만 느낀다면 그건 결코 바람직한 주번의 태도가 아니다.

엄마가 외출하면서 동생을 잘 돌보라고 넌지시 맏이에게 돌봄 완장을 채워 준다.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 한다고 맏이가 동생을 부려 먹고 장난감을 뺏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면 동생은 눈물 쏟을 일밖에 없다. 반면 동생에게 먹을 걸 챙겨주고 함께 놀아주며 맏이 역할을 잘하면 모두가 행복해진다.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까지. 완장 찬 사람의 역할은 그렇게 중요하다.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도 있고 불행하게 할 수도 있다.

아일랜드 신경심리학자 이언 로버트슨은 개코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권력감은 코카인과 같은 중독성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권력감은 도파민이라는 신경호르몬 분비를 촉진해 뇌의 중독 중추를 활성화한다는 것이다. 집단의 하위에 있는 개코원숭이는 지위가 올라갈수록 도파민 분비량이 늘었다. 그럴수록 공격적이고 자신감이 넘치는 쪽으로 변모했다. 로버트슨은 “권력이 강할수록 도파민이 많이 분비되고 자신의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는 성격이 된다”며 “절대권력의 속성을 생물학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무게를 바른 자세로 견딜 수 있는 사람이 완장을 차야 한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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