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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묘소 테러와 KAL기 폭파… 격동의 남북 19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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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3 17:00:00 수정 : 2021-11-23 18: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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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10월 9일 미얀마 아웅산 묘소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수초 전의 장면을 찍은 사진. 연합뉴스

23일 사망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재임 기간 남북관계는 한국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북한은 1980년대 들어 ‘아웅산 묘소 테러’ 등의 폭탄 테러로 남북 간 긴장을 극도로 고조시켰다.

 

북한은 지난 1983년 10월 미얀마를 방문한 전 전 대통령이 미얀의 국부로 추앙받는 아웅산 국립묘소를 참배할 때 묘역에 폭탄을 설치하고 테러를 자행했다. 이 테러로 당시 서석준 부총리와 김재익 경제수석비서관 등 수행원 17명이 사망하고 14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 전 대통령은 가까스로 테러를 피했다. 당시 이 테러는 북한군 정찰총국 소속 군인들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사실상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북한의 테러에 남측은 겉잡을 수 없는 피해를 입었고, 미얀마의 건국자인 아웅산의 묘소가 폭파당한 사실에 미얀바 등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이를 계기로 남측은 북한과의 모든 대화를 단절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을 맡이했다.

 

당시 한반도는 전쟁이 발발해도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반대와 전 전 대통령이 “내 명령없이 움직이면 반역으로 간주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며 전쟁까진 치닫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후 남북관계는 다소 온건했다. 1984년 9월 남측 중부지방에 대홍수가 발생하자, 북한은 조선적십자회 이름으로 통지문을 보내 쌀 5만석(7200t), 시멘트 10만t, 의약품 등의 지원을 제안했고, 남측에서도 북쪽의 제안을 전격 수용했다.

 

1987년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 희. 연합뉴스 자료사진

하지만 북한의 테러는 끝나지 않았다. 지난 1987년 11월 한국의 제13대 대통령선거를 열흘 남짓 앞두고 북한 공작원 김현희 등의 테러에 의해 한국의 KAL 비행기가 폭파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테러로 중동에서 귀국 중이던 한국인 근로자와 승무원 등 총 115명이 전원 사망했다.

 

또한 전 전 대통령은 1986년 북한이 금강산댐을 건설해 무려 200억t의 수공을 펼쳐 서울을 물바다로 만드려고 한다며, 이를 막기 위한 ‘평화의 댐’ 건설 모금을 받아 일부를 비자금으로 빼돌리며 남북관계를 이용하는 등 한반도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전 전 대통령의 핵 개발 포기는 여러 논란이 제기된다. 그는 1983년 11월 한국을 방문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에게 핵 개발 포기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12·12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그가 미국으로부터 정통선을 인정받기 위해 핵 개발 포기 카드를 꺼내들었고, 미국이 이를 수용했다는 것이 지배적인 의견이었다.

 

전 전 대통령의 핵 개발 포기로 박정희 정권 말기 악화됐던 미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한반도 군사적 긴장감 완화라는 효과를 가져왔지만, 명분없는 쿠데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협상안으로 쓰인 것은 여전히 논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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