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 습격·인종차별 범죄 중심에
인종차별 재판도 백인 정서 읽혀
‘시위대 2명 살해’ 무죄 평결 논란
분노한 백인 남성 범죄 늘어날 듯
공화당원 30% “나라 위해 폭력 정당”

“오늘날 미국에서 제일 무서운 건 ‘성난 백인 남자’이다.”
최근 미국에서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에 총을 쏜 10대 청소년이 무죄 평결을 받은 것을 두고 미국 사회에서 비판적인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CNN방송은 21일(현지시간) 이렇게 지적했다. 2016년 모두의 예상을 깨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부터 미 의사당 습격 사건, 인종차별적 범죄와 여기에 관대한 재판부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를 흔든 사건 중심에 백인 남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날 CNN은 “오랫동안 미디어는 ‘흑인=범죄자’란 이미지를 전파해왔고, 흑인 남성들은 일종의 정신적 세금을 내듯 차별을 받아들이는 법을 터득해 왔다”며 “하지만 최근 몇 년간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보면,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건 성난 백인 남자가 아닌가 싶다”고 전했다.
5년 전 트럼프가 주요 언론과 전문가들의 전망을 뒤엎고 대통령에 당선된 건 백인 남성의 전폭적 지지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당시 CNN의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백인 남성 10명 중 6명(62%)이 트럼프에 표를 던졌다. 모든 인종·성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지지율이었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백인 남성은 그 절반에 불과했다. 트럼프의 승리를 두고 언론은 ‘백인 블루칼라의 분노’를 주요 요인으로 꼽았다.
지난해 대선에서 트럼프의 패배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극렬 지지자들은 올 초 미 의사당에 난입해 또 한번 충격을 줬다. 이번에도 백인 남성들이 주인공이었다. 미 시카고대가 기소된 약 400명의 성별과 인종을 분석한 결과 93%가 백인이었고, 86%가 남성이었다. 로버트 페이프 시카고대 박사는 “소수자와 이민자가 미국 정치와 문화에서 백인의 권리를 밀어내고 있다는 두려움이 의사당 난입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잇따르는 인종차별 범죄의 재판과정에서도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는 백인의 정서가 읽힌다. 지난해 8월 위스콘신주에서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시위대에 총을 쏴 2명을 살해하고, 1명을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카일 리튼하우스에 대한 재판은 배심원단 구성부터 논란을 빚었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백인 남성 판사 브루스 슈뢰더는 하루 만에 배심원 선정 과정을 마쳤고, 그렇게 구성된 배심원단에는 유색인종이 1명만 포함됐다. 또 사건 피해자들을 법정에서 ‘희생자’가 아닌 ‘폭도’나 ‘약탈자’로 부르도록 했다.
지난해 동네에서 조깅하던 흑인 청년을 강도로 오해하고 쫓아가 살해한 그레고리 맥마이클과 그의 아들 트래비스의 재판 때도 비슷했다. 이달 초 사건이 일어난 글린 카운티 주민들을 중심으로 배심원이 꾸려졌는데 12명 중 1명만 흑인이었고 나머진 모두 백인이었다. 글린 카운티의 주민 중 흑인 비율은 약 25%에 달한다.
CNN은 ‘성난 백인 남성들’의 범죄가 앞으로 더 빈번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달 초 미 공공종교연구소(PRRI)의 설문 결과 공화당원 30%가 ‘나라를 구하기 위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다’고 답했다. 트럼프 주장대로 지난해 대선이 ‘도둑맞았다’고 믿는 공화당원 중에는 그 비율이 39%로 올라갔다.
정치권도 이런 심리를 이용한다. 미 공화당의 폴 고사 하원의원은 지난 8일 트위터에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AOC) 하원의원을 일본도로 살해하고, 바이든 대통령에 칼을 휘두르는 모습을 담은 애니메이션을 올렸다. AOC는 진보성향의 히스패닉 여성 정치인이다.
CNN은 “백인 남성의 폭력행위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계속되는 한 더 많은 미국인의 희생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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