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신고 “위치 부정확”… 12분 헤매
2차 신고 후에야 사건 현장 도착
제때 출동했다면 범행 저지 지적
흉기난동 때 경찰 ‘현장이탈’ 논란
시민단체, 서장 직무유기 혐의 고발
시·도 경찰청장들 22일 대책 논의

데이트폭력 피해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던 30대 여성이 서울 시내 자택에서 전 남자친구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피해 여성은 지급받은 스마트워치로 긴급구조 신고를 했으나, 경찰이 최초 신고 접수 이후 사건 현장에서 500m가량 떨어진 곳으로 출발하는 바람에 목숨을 잃었다. 경찰이 ‘골든타임’을 놓친 셈이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중부경찰서는 30대 여성 A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살인 등)로 A씨의 전 남자친구인 30대 B씨를 전날 대구 소재 숙박업소에서 검거했다. B씨는 지난 19일 범행을 저지른 뒤 달아났다가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중구 저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거주하던 A씨는 B씨에 의한 스토킹 피해로 지난 7일부터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중이었다. 사건 당일인 19일 오전 11시29분쯤 A씨는 경찰로부터 받은 스마트워치로 1차 신고를 했다. 그러나 경찰이 A씨의 신고를 받고 3분 뒤 도착한 곳은 A씨의 자택과 떨어진 명동이었다. 그 직후인 오전 11시33분쯤 A씨가 2차 신고를 했고, 3분 뒤 ‘A씨가 머리 부위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다’는 내용의 이웃주민의 신고가 접수됐다.
경찰이 사건 현장인 A씨의 집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41분쯤으로, A씨의 1차 신고 기준으로 12분 정도가 지난 뒤였다. A씨는 병원에 이송됐지만 숨졌다.

경찰은 스마트워치 위치추적 시스템의 한계로 A씨 신고 당시 상황실이 파악한 위치가 부정확했던 탓에 출동이 늦어졌다고 설명했다. A씨의 두 차례 신고에 따라 확인된 위치가 A씨의 집에서 500m가량 떨어진 명동 내 한 지점으로 표시돼, 명동 관할인 남대문경찰서가 최초 사건 지휘를 맡았다. A씨의 집이 있는 저동은 중부경찰서 관할이다. 경찰은 남대문서가 2차 신고 이후 A씨 주거지가 있는 중부서에 공조를 요청한 뒤에야 사건 현장을 확인했다.
현행 스마트워치 위치추적 시스템은 신고자 위치를 1차로 기지국 위치값으로 확인한 뒤 5초마다 와이파이(Wi-Fi), GPS(위성) 위치값을 추가로 확인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그러나 응답률이 90%대인 기지국과 달리 와이파이·GPS는 응답률이 30% 수준에 머무르는 탓에, 오차 범위가 최대 2㎞에 이른다. 경찰청은 이런 문제를 해소하고자 지난달 말부터 와이파이·GPS 응답률을 99%까지 높여 오차범위를 최대 20m 이내로 줄인 위치추적 시스템을 시범운영 중이다.
경찰의 스토킹 범죄에 대한 안이한 대응도 도마 위에 올랐다. A씨 지인들은 A씨가 오랜 기간 스토킹에 시달렸지만 경찰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과거에도 B씨가 A씨 집을 찾아와 신고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는 것이다. 앞서 2017년 8월 부산에서도 신변보호를 받던 50대 여성이 본인이 운영하던 주점을 찾아온 전 연인을 보고 스마트워치로 신고했지만, 경찰이 500m 정도 떨어진 여성의 집으로 출동하는 바람에 연인이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에도 경찰은 위치추적 시스템 개선을 약속했으나 공염불에 그쳤다.

경찰청장은 22일 이번 사건과 함께 ‘인천 층간소음 흉기난동 부실대응' 논란과 관련해 각 시도경찰청장이 참석하는 화상회의를 열고 현장 대응능력 강화 등 대책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편 시민단체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흉기난동 부실대응 논란과 관련해 최근 인천 논현경찰서장을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했다고 이날 밝혔다. 논현서 모 지구대 소속 C순경과 D경위는 지난 15일 오후 5시5분쯤 남동구 한 빌라에서 발생한 흉기난동 사건 당시 현장을 이탈하거나 제때 합류하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사건으로 신고자의 부인은 목 부위를 흉기에 찔려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 가족도 최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흉기 난동 현장에서 부실한 대응으로 피해를 키운 경찰관들을 엄벌해달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 글은 10만명 이상이 사전 동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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