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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노트르담 드 파리’의 전설, 프랑스 국민가수 다니엘 라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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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1 01:00:00 수정 : 2021-11-21 00: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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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1998년 ‘노트르담 드 파리’ 초연으로 뮤지컬 무대에 데뷔한 다니엘 라부아는 서울 공연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인터뷰에서 “프롤로를 처음 연기했을 때가 마흔 일곱살이고 지금 일흔둘인데 그 사이 프롤로도 계속 변화했고 제가 연기하는 방식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졌다. 프롤로와 함께 늙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허정호 기자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운 후 음악은 그의 길이었다. 1973년 자신의 노래를 처음 녹음한 후 가수로 화려한 삶을 살았다. 1984년 처음 부른 ‘그들은 서로를 사랑한다(Ils s'aiment)’는 지금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연한 신인들이 자주 부르는 ‘프랑스 국민가요’. 사십 대엔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프랑스 공화국 기사로 서훈되는 영예를 얻었다.

 

가수로서 더는 바랄 게 없는 그 무렵 새로운 도전이 필요했다. 마침 찾아온 작품이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금지된 사랑에 번민하는 사제 프롤로였다. 뮤지컬 데뷔작은 브로드웨이 작품과는 색다른 개성을 자랑하는 프렌치 뮤지컬의 자부심이자 세계적 흥행작이 됐다. 생각지도 못한 대히트로 올해 72세가 되어 다시 ‘노트르담 드 파리’ 무대에 오른 그는 앞으로도 계속 무대에 설 계획이다.

 

“프롤로로 천번 이상 무대에 선 솔직한 마음이요? 정말로, 정말로 솔직히 답하자면 매번 노래를 부를 때마다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일 년이면 백일 정도 프롤로로 공연하는데 매번 운 좋게 객석은 꽉 차있고 즐거워하는 게 그들의 얼굴에서 보입니다. 연기하는 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잘 알고 있기에 단 한 번도 지겨웠던 적 없이 매번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명불허전의 프렌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가 서울로 돌아왔다. 1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개막한 이 대작의 무게추는 ‘다니엘 라부아’. 1998년 초연 때부터 집시 여인을 향한 사랑에 자신의 신앙과 영혼마저 불태워버리고 마는 프롤로로 열연 중인 배우이자 프랑스가 사랑하는 가수, 작곡가, 그리고 시인이다.

다니엘 라부아 /2021.11.16/허정호 선임기자

개막을 하루 앞둔 지난 16일 숙소인 공연장 인근 호텔에서 가진 세계일보와 인터뷰에서 그는 얼마나 무대에 서는 것을 사랑하며, 음악과 함께 함께 하는 삶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아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따뜻한 미소로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그처럼 늙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절로 생기는 시간이었다.

 

─지난해 첫 내한 이후 1년여 만에 다시 한국 무대에 서게 됐습니다. 다시 한국 관객을 만나는 감상이 궁금합니다.

 

“이전부터 ‘한국에 꼭 와야한다’는 이야기를 동료 배우에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안타깝게 조기 종연돼 아주 짧게만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와서 너무 기쁜 데다가 코로나19 때문에 굉장히 오랫동안 공연을 못 했잖아요. 그래서 다시 제가 너무나 좋아하는 음악과 공연을 제가 궁금해했던 나라에서 시작하게 돼 행복합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오랜만에 무대에 다시 서게 됐는데 연습은 순조로웠나요.

 

“지금 준비 자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순조롭습니다. 연습할 때조차도 모든 배우와 댄서가 다시 공연을 재개해서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게 느껴집니다. 연습실에서도 에너지가 굉장히 좋고 다들 기분이 올라간 상태에요.”

 

─‘노트르담 드 파리’와 첫 만남이 궁금합니다. 이전 인터뷰에서 “음악은 좋아도 유행하던 노래 스타일이 아니라 솔직히 금세 망할 줄 알았다. 긴 여정을 함께 해 자랑스럽다”고 했는데 어떤 인연으로 출연하게 됐나요.

 

“실은 작사가(뤽 플라몽동)가 제 오랜 친구입니다. 카세트를 보내주면서 ‘한번 들어보라. 너에게 줄 역할이 있다’더군요. 들어봤더니 너무 아름다운 거예요. 그런데 당시 유행했던 스타일과는 달라서 그런 얘기를 했는데 ‘우리는 항상 잘못된 예측을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은 거죠.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마치 ‘산불’같았어요. 알아서 소문이 퍼져나가고 빠르게 흥행이 성공하는 모습을 보게 된 거죠.”

─뮤지컬 배우로는 데뷔작인데 어떤 계기로 출연을 결심한 건가요.

 

“캐나다와 프랑스에서 가수와 작곡가로 30년 동안 활동했습니다. 흔히 얘기하는 ‘빅스타’였죠. 그렇게 사십 대 중반이 됐는데 워낙 록스타나 가수로서 삶이 익숙해서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은 시점이었습니다. 그때 딱 제안 들어온 게 ‘노트르담 드 파리’였죠. 새로운 분야이니 한번 해봐야지 했는데 그게 프랑스 뮤지컬을 통틀어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 됐죠. 제가 얼마나 운 좋은 뮤지컬 배우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노트르담 드 파리’는 정말 좋은 노래들이 많은데 그중에서도 세 주인공이 함께 부르는 ‘아름답다(Belle)’는 무려 44주간 프랑스 팝차트에서 1등을 했고 우리나라 음악 교과서에도 실렸을 정도였습니다. 정말 여러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렀는데 당시 열기를 기억하나요.

 

“잊을 수 없는 기억이 하나 떠오르네요. ‘아름답다’가 아직 인기를 얻기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셋이서 노래를 불렀는데 PD가 ‘한 번 더 불러달라’는 거에요. 잘 불렀는데 왜 그러는지 물어보니 ‘노래가 너무 좋아서 더 듣고 싶다’였습니다. 그때 ‘아. 이 노래가 특별한 뭔가가 있구나’하고 알았죠. 이 노래 말고 80년대 제가 작곡을 했던 노래(Ils s'aiment)가 또 큰 성공을 거뒀는데 둘 다 마법같아요. 갑자기 성공을 거두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굉장한 공감대를 관객과 형성하는 그런 마법을 제 평생에 두세번 정도는 겪은 듯합니다. 그 노래가 80년대 스타일로 굉장히 오래된 노래인데 요즘도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온 젊은 가수들이 자꾸 부른단 말이죠. 참 마법 같은 일입니다.”

다니엘 라부아 /2021.11.16/허정호 선임기자

─‘노트르담 드 파리’가 그토록 특별하고 오랫동안 여러 나라에서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나름의 생각은 있지만 정답은 아닐 수도 있어요. 이야기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죠. 여자가 한 명 있고 그녀를 사랑하는 세 명의 남자가 마음을 얻기 위해서 싸우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들려주고 보여주는 방식이 굉장히 효과적이에요. 그 단순한 이야기를 너무나 아름답게 효과적으로 들려주면서 관객의 마음마저 사로잡은 것이죠.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라면 비결인 것 같은데 제 해석일 뿐이고 정답인지는 오랫동안 공연했지만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무엇보다 노래가 아름답죠. 노래도 아름답고 그 모든 것들이 그야말로 우리가 설명하지 못한 기적적인 효과를 낸 것 같습니다.”

 

─한 배역으로 초연 이후 이십여년만에 다시 무대에 서는 경험은 어떤 것인가요.

 

“프롤로라는 인물은 ‘노트르담 드 파리’에 나온 인물 중에서 가장 복합적인 캐릭터예요. 그리고 또 저와 함께 나이를 먹었는데요. 제가 처음에 프롤로를 연기했을 때가 마흔 일곱살이고 지금 제가 이제 일흔둘인데 그 사이에 프롤로도 계속 변화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연기하는 방식도 표현하는 방식도 달라졌습니다. 이 인물이 굉장히 흥미롭고 매력적인 건 우리가 인간으로서 가진 장단점을 다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선 장점부터 말하자면 종지기인 콰지모도를 거둬들인 굉장히 선하고 관대한 신부였죠.  그리고 자기 일에 매우 진지하고 똑똑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요. 그래서 자신도 너무 놀라고 또 그렇게 자기가 예상하지도 못한 그런 사랑이라는 감정 앞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몰라요. 그러다 보니까 끔찍한 일까지 저지르는데 이런 면이 나약한 인간일 뿐인 우리랑 많이 닮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복합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너무나 흥미롭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복합적인 캐릭터여서 연기할 때 특별히 더 신경 쓰는 대목이 있는가요.

 

“어떤 한 장면을 제가 애착을 갖거나 특별한 공을 들인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장면이 너무나 중요하고 모든 장면에서 제가 정말 온전히 프롤로로 집중해야하기 때문인데요. 사실 굉장히 비중이 작은 장면도 있고, 굉장히 비극적인 장면도 있지만 어느 한순간도 ‘프롤로를 연기하는데 게을러지면 안 된다. 내가 프롤로라는 인물로 완전히 몰입해야 된다’는 것을 항상 머릿속에 각인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장면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프렌치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여인을 향한 욕망으로 고민하다 자멸하는 사제 프롤로를 열연중인 다니엘 라부아.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아름답다’ 이외에도 프롤로가 부르는 ‘파멸의 길로 나를’, ‘신부가 되어 한 여자를 사랑한다는 것’은 정말 감동적인 노래입니다. 그만큼 부르기 어려운 노래일 것 같은 데 정말 자연스럽게 부른다는 느낌이어서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로는 어떤가요. 

 

“(한숨을 내쉬며)굉장히 어려운 노래를 쉽게 부른다고 했는데 사실 그게 저희가 추구하는 바예요. 노래 자체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난이도도 높고 요구 사항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서 엄청나게 연습을 해야 돼요. 1년에 한 번 이렇게 무대에 서기 위해서 한두 달 정도 연습을 하면서 다시 보컬 테크닉을 찾으면서 굉장히 어렵지만 관객에겐 쉽게 들릴 수 있도록 연습을 합니다. 아마 모든 다른 분야도 이처럼 어려운 걸 쉽게, 편안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노트르담 드 파리’는 세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라지만, 파리 길거리를 떠돌며 저항하는 집시들은 또 다른 주인공일 수 있습니다. 제작진이 상당한 비중을 부여한 것은 어떤 이유였을까요.

 

“어느 정도 약간 정치적인 선택인 것 같아요. 저희가 사는 지구 위에는 굉장히 살 곳이 없어서 여기저기를 떠도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죠. 그러다 보니까 작가가 의도적으로 넣었죠. 인류 역사에는 언제나 이렇게 거처를 찾아서 떠돌아다니는 사람들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금 뉴스를 들을 때 하루도 불법 체류자 난민 문제를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현재 우리가 사는 시대에 굉장히 중요한 이슈 같습니다. 그래서 이 보헤미안 집시들의 존재가 현대 사회 문제를 굉장히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또 마음이 아프기도 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원작자 빅토르 위고가 작품에 그린 14세기에는 사실 불법 체류자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죠. 그런데 이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유럽이나 미국, 캐나다 등 전 세계적으로 더 나은 삶을 찾아 떠도는 많은 이민자와 난민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품 배경에 맞게 집시로 이 문제를 넣은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원조 프롤로의 뮤지컬 배우로만 알려져 있지만, 프랑스어권에서 잘 알려진 가수이자 여러 권의 시집을 낸 작가, 영화음악까지 만든 작곡가이고 라디오 방송 진행자로도 활동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활동 중 어떤 일을 가장 즐겼는지요.

 

“실제로 그 분야가 무엇이든지 간에 창작 활동을 할 때, 무언가를 만들때 제일 큰 평안함과 행복을 느낍니다. 프롤로로서 연기를 하거나 노래를 부를 때도 힘든 것보다 기쁨이 큰데, 글을 쓰거나 곡을 만들 때는 정말 머릿속을 쥐어짜 내면서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거든요. 그래서 언제 가장 큰 즐거움을 느끼냐고 묻는다면 노래를 부르거나 연기를 할 때인데 그렇다고 창작보다 연기·노래를 더 좋아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하는 일 모두를 좋아하고 우선순위를 매기기는 너무 어렵네요.”

1998년 ‘노트르담 드 파리’ 초연 멤버로 서울 무대에 서는 다니엘 라부아. 

─다섯살때 수녀님한테 음악을 배웠다고 알려져 있는데 맞나요. 음악인으로 살 것을 결심한 시기가 있었나요.

 

“처음 피아노를 가르쳐준 게 수녀님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음악을 하기로 결정한 게 아니라 음악이 저를 선택했다고 할까요. 원래 저는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다섯 살 때 피아노를 배운 후 그냥 평생을 음악과 함께 하게 됐습니다. 음악이 제게는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 너무 쉬웠고, 하루에 길게는 스무 시간씩 음악에 빠져있다 보니까 여기까지 왔지 어떤 계기로 음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그러지는 않았습니다.”

 

─‘프롤로’라는 배역과 함께 늙어간다고 말했는데 젊었을 때 프롤로를 연기했던 느낌과 지금 느낌이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느낌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게 그냥 프롤로와 함께 나이가 드는 게 지금 현재 실제 상황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일부러 프롤로를 젊은 인물로 유지하려 노력하지 않았어요. 제가 나이 먹으면서 프롤로도 같이 나이 먹게끔 계속 연기를 바꿨습니다. 나이 들었는데 갑자기 젊은 프롤로로 연기를 하면 관객이 진짜처럼 느껴지지 않을 거잖아요. 관객도 그 인물을 보고 ‘이게 진짜’라고 믿어야겠지만 배우도 그러한 믿음이 있어야돼요.”

 

─곧 책을 내고 새로운 앨범과 대형 콘서트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습니다. 내년엔 어떤 계획이 있나요.

 

“시집을 냅니다. 원래 코로나19 대유행 이전에 발간하려 했는데 일정이 엉켜지면서 미뤄졌는데 곧 나올 예정입니다. 또 랭보의 시를 가사로 만든 노래 앨범이 나와요. 기존에 없는 너무나 특이하고 접근하기 쉽지 않은 앨범인데 제 나이쯤 되면 이렇게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또 다른 앨범은 아들과 함께 만든 영어 노래입니다. 아들도 뮤지션이고 감독으로 일하고 있어요.”

다니엘 라부아 /2021.11.16/허정호 선임기자

─쉬고 싶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끊임없이 일하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하하하. 제가 스물일곱살 때 ‘은퇴한다’고 선언했어요. ‘나 이제 그만하겠다. 쉬겠다.’ 그 말을 딱 육 개월 지켰습니다. 그러고 나니 너무 지겨워서 안 되겠어요.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죽을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해야지’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그 이후 오랫동안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에 너무 행복하고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합니다. 죽을 때까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전설적 가수 나나 무스꾸리와 함께 이브 몽땅의 고엽을 부른 동영상에 관해 물어봤다. “네. 나나 무스꾸리는 제가 젊었을 때 존경하는 인물이었어요. 그렇게 같이 노래를 부른 좋은 기억을 갖고 있습니다. 가수로서 오래 활동했다보니 샤를 아즈나부르(프랑스 국민가수·1924─2018), 질베르 베코(1927─2001)라든지 브루스 스프링스틴 같은 이제 이름만 들어도 전설이 된 뮤지션들과 함께한 순간이 너무나 많았어요. 그런 순간을 회상하면 ‘삶이 나에게 너무나 친절했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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