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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참전용사는 어떻게 ‘기후 차르’가 됐을까…존 케리 임명 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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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20 07:00:00 수정 : 2021-11-19 21:3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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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리, NSC 참석하는 첫 기후특사로 활약
5선에 대선후보로 선출…국무장관도 역임
팀머만스 부위원장 “케리는 복잡한 문제 쉽게 풀어”
이달 13일(현지시간) 존 케리 미국 기후특사가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영국 글래스고에서 연설하고 있다. 글래스고=로이터연합뉴스

‘기대 이하’란 평가로 폐막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에서 소기의 성과 한가운데에는 존 케리(77) 기후특사가 있다. 케리는 이달 10일(현지시간) 셰전화(解振華) 중국 기후특사와 공동 선언을 깜짝 발표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셰전화와 20번 넘게 만나온 케리의 존재감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달 23일이면 케리가 기후특사로 발탁된 지 1년을 맞는다. 베트남전쟁에 참전한 전쟁영웅은 어떻게 전 세계 정상들을 향해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리더가 됐을까?

 

대선 후보에 이어 버락 오바마 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거친 케리는 워싱턴 정계의 중량급 인사로 통한다. 1년 전 그가 기후특사로 지명될 시 언론들이 ‘조 바이든 정부가 환경 문제를 얼마나 진지하게 여기는지 나타나는 대목’이라고 짚은 이유다. 동시에 그는 국가안보위원회(NSC)에 참석하는 첫 기후특사가 됐다. 기후특사 자리는 오바마 전 정부 시절에도 있었으나 백악관의 주요 외교정책 수립 기구인 NCS에 참석하는 멤버는 아니었다. 이 때문에 외신들은 “바이든이 기후변화를 국가안보 문제로 격상시켰다”고 분석했다.

 

케리는 직업 외교관인 아버지와 미국 언론재벌인 포브스 일가의 어머니 밑에서 태어난 상류층 자제였다. 부유한 고모가 학비를 대 줘 스위스의 명문 기숙 학교에 다니다가 14살 때 미국 매사추세츠로 돌아왔다. 예일 법대에 입학한 그는 졸업 뒤 해군 장교에 지원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참전으로 은성훈장까지 받은 그는 이후 반전운동가로 활동했고, 베트남 참전 용사 단체의 대변인을 지냈다.

 

화려한 경력을 바탕으로 1982년 매사추세츠 부지사를 지낸 그는 1984년 매사추세츠 상원의원으로 선출된다. 이후 1990년, 1996년, 2002년, 2008년을 내리 재선해 5선의 정계 거물로 성장했다. 2004년에는 민주당 대선후보로 선출돼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맞붙었다. 당선에는 실패했지만 2009~2013년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경험으로 오바마 정부 2기 시절 2013~2017년 국무장관을 역임했다.

 

국제무대에서 누적된 외교력은 그를 바이든 정부의 기후특사로 이끌었다. 도널드 트럼프 정권 시절 실종됐던 기후 문제에서 미국의 리더십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외교에 능한 인물이 기후특사에 필요했다. 지난달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와 인터뷰에서 그는 스스로 다문화주의적인 자신의 성격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다른 문화, 다른 나라의 관점에서 보는 것이 매우 익숙하다”며 “오로지 미국만의 렌즈로 사물을 바라보지 않는다”고 밝혔다.

 

타임지에 따르면 케리와 관계를 맺은 각국 관료들은 그가 쌓아온 네트워크가 미국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평가한다. 웬디 셔먼 미 국무부 부장관 “케리가 수십 년간 맺어온 관계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궁극적으로 외교적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 그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대표는 “케리는 힘 그 자체”라며 “그만의 에너지에 더해 장기적인 헌신이 결합해 건설적인 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유럽연합(EU)의 녹색 정책 책임자인 프란스 팀머만스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은 “그와는 신뢰를 기반으로 해 복잡한 문제가 더 쉬워진다”고 했다.

 

국무장관 재임 시절 그는 이란 핵 협상을 이끄는 등 굵직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국무장관의 옷을 입고 있으면서도 기후 외교를 강조해 왔다. 기후위기를 환경청만의 문제가 아닌 오바마 정부의 주요 의제로 올리는 데 주요한 역할을 했다. 당시 케리의 비서실장이던 존 파이너 NSC 부보좌관은 “케리는 국무부 사람 모두가 기후위기에 해박함을 갖추도록 압박했고, ‘국무부에 있는 모든 외교관은 어느 정도 수준의 기후 협상가가 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21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파리기후변화협약’(파리협정)이 채택된 것은 결국 이 같은 노력이 토대가 됐다. 물론 파리협정 1년 전부터 미·중회담을 거치면서 미·중 양국의 기후 협력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케리는 2016년 유엔본부에서 열린 파리협정 서명식에 미국 대표로 참석했다. 기후변화를 막는 것이 미래 세대에 대한 의무라는 의미에서 자신의 손녀딸을 꼭 안고 협정에 서명해 주목을 받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취임 다섯 달 만인 2017년 6월에 파리협정을 탈퇴를 선언했다.

 

영국 글래스고에서 COP26를 마친 그는 19일 블룸버그포럼에 연사로 참석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퇴보시킨 기후변화 대응을 만회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정치인도 기후변화를 완화하려는 노력을 뒷걸음질 치게 할 수 없다”며 “글래스고에서 한 일은 앞으로 10년간의 레이스를 시작하기 위한 신호탄을 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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