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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사업가→독립운동가’ 김상옥이 마지막 사진서 ‘뒷짐’ 진 이유(꼬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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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19 15:10:02 수정 : 2021-11-22 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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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캡처

 

1호선 종각역 근처에는 ‘김상옥 의사 의거 표지석’이 작게 마련돼 있다. 이는 성공한 청년사업가에서 독립운동가로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간 김상옥 의사가 종로 경찰서를 폭파한 후 쫓기다 자결한 곳이으로, ‘꼬꼬무’에서는 거사를 치르기 전 김상옥 의사가 마지막으로 남긴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

 

지난 18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독립운동가 김상옥의 일대기가 전해졌다.

 

김상옥은 엄청난 사업 수완으로 전국 체인점까지 차리며 남부러울 것 없는 청년사업가의 삶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1919년 3.1 만세 운동 당시 만세 행렬에 참여하다 만세를 불렀단 이유로 팔이 잘리고 검에 찔려 죽는 상황을 목격한 뒤 독립운동가의 길에 들어섰다.

 

낮에는 사업가로, 밤에는 독립운동 소식을 전하는 신문을 만들었고, 독립 자금 등을 지원하는 등 활동을 펼쳤으나 밀정에게 발각돼 종로 경찰서에 체포된다. 40일간 끔찍한 고문을 견디고 난 후 김상옥은 평화가 아닌 무력으로 일본에 맞서기로 결심했다. 

 

김상옥은 이같은 결심 후 김구 선생이 있던 상해로 떠났다가 다시 경성(현재 서울)으로 돌아왔다. 그는 상해를 떠나기 전 마지막 사진을 남겼다.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화면 캡처

 

해당 사진 속에서 김상옥은 뒷짐을 지고 결연한 눈빛을 띠고 있다. 그 이유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는데 아무것도 못 하고 가만히 있는 손이 너무 부끄러워서 내놓을 수가 없다”며 두 손을 가린 의미였다.

 

이후 김상옥은 조선총독부 총독 암살 작전을 계획했으나 당초 상해에서 보내주기로 한 대형 폭탄은 감감무소식이었고, 자신의 수중에 있던 소형 폭탄의 성능을 보기 위해 종로 경찰서에 폭탄을 던졌다.

 

이는 자신의 가족과 독립운동가들에 끔찍한 고문을 자행한 종로 경찰서에 대한 복수이자, 한국인들을 핍박하는 일본에 대한 큰 저항이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보다 빨리 일본 경찰들의 포위망이 좁혀왔고 김상옥은 한 건물의 변소에 숨었다.

 

이윽고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일본군이 그의 모친을 총받이로 앞세운 채 확인한 김상옥의 모습은 당장 총을 쏠 것처럼 눈을 부릅뜬 채 양손에는 총을 쥐고 죽어 있었다. 그의 발은 동상으로 모두 잘려나간 상태여서 당시의 참혹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실패하면 내세에서 만나자. 적의 포로가 되진 않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보이며 거사를 치른 김상옥의 정신은 의거 터에 마련된 표지석과 함께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 켠에 동상으로 남아있다.


강소영 온라인 뉴스 기자 writerk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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