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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 책읽기 세상읽기] (63) ‘타인의 고통’ - 공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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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1-09 16:00:00 수정 : 2021-11-09 14: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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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작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수전 손택의 저서 ‘타인의 고통’은 ‘끔찍하기 이를 데 없는 현실을 기록하고 보여주는 사진의 힘’에 관한 이야기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그것에 개입할 능력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영국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3기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3기니’는 울프에게 편지를 써서 “당신의 견해로는 우리가 전쟁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은 저명한 변호사에게 보내는 답장 형식의 에세이다. 울프는 ‘우리‘라는 표현을 쓴 데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 “당신은 전쟁을 방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겪은 실패는 상상력의 실패, 공감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손택은 “당면의 문제가 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더 이상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손택은 “현대사회에서는 타인의 고통을 (멀리 떨어져서, 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가 셀 수도 없이 많다”고 강조한다.

 

“스페인 내전(1936∼39)은 현대적인 의미에서 사람들이 지켜본 (‘보도된’) 최초의 전쟁이었다. 교전이 벌어지고 있는 전선, 폭격을 받고 있는 마을에서 일군의 전문 사진작가들이 찍은 사진들은 스페인이나 해외의 각종 신문과 잡지에 곧장 실리곤 했다. 텔레비전 카메라가 매일같이 보여준 최초의 전쟁, 즉 미국이 개시한 베트남 전쟁 당시에는 머나먼 곳을 상세히 보여줄 수 있는 새로운 장치를 통해서 죽음과 파괴의 모습이 가정의 코앞에까지 찾아들어 왔다.”

 

텔레비전, 영화 등 숱한 이미지들이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지만 사진이 가장 자극적이다.

 

“프레임에 고정된 기억, 그것의 기본적인 단위는 단 하나의 이미지이다. 정보 과잉의 이 시대에는 사진이야말로 뭔가를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자 그것을 간결하게 기억할 수 있는 형태이다.”

 

충격적인 이미지가 핵심이다. 

 

“좀더 극적인 이미지들을 찾아 나서려는 충동이 사진 산업을 등장시켰으며, 사진 산업은 곧 충격이 소비를 자극하는 주된 요소이자 가치의 원천이 되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여겨지게 된 문화의 일부가 됐다.”

 

손택은 “사진은 객관적인 기록인 동시에 개인적인 고백이 될 수 있으며, 실제 현실의 특정한 순간을 담은 믿을 만한 복사본이자 필사본인 동시에 그 현실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사진은 대상화한다. 사진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을 소유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변형시켜 버린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사진이 당시에 일어난 일을 투명하게 보여주는 것일까. 사진이 보이는 바를 그대로 보여준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진 이미지도 누군가가 골라낸 이미지일 뿐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구도를 잡는다는 것이며, 구도를 잡는다는 것은 뭔가를 배제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뭔가를 구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연출되거나 피사체에 손을 댄 흔적이 남아 있는 사진들도 많다. 손택은 나아가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도 없다”고 한다.

 

“우리가 집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 즉,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이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 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우리의 정신 속에 꼭꼭 챙겨두는 것이다.”

 

(FILES) Photo taken 09 May 2001 shows American writer Susan Sontag (R) talking at an awards ceremony after winning the Jerusalem Prize for the Freedom of Individuals in Society. Sontag died, 28 December 2004 at New York's Memorial Sloan-Kettering medical centre at the age of 71, following a long struggle with cancer. AFP PHOTO/Nitzan SHORER/HO 미국 여류작가 수전 손택이 지난 2001년 5월 9일 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를 신장한 공로로 예루살렘 상을 수상한뒤 시상식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모습. 손택 여사는 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28일 뉴욕의 메모리얼 슬로운-케터링 메디컬 센터에서 향년 71세를 일기로 타계했다(AFP=연합뉴스).<저작권자 ⓒ 2004 연 합 뉴 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사람들이 사진을 통해 뭔가를 기억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사진만을 기억한다는 데 있다. 손택은 “이렇듯 사진만을 통해서 기억하게 되면 다른 형태의 이해와 기억이 퇴색된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이 자신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는 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런 고통을 가져온 원인에 연루되어 있지는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그가 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보내는 데 그치지 말고 이미지에 휘둘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은 ‘미디어 아라크네’에서 “타인의 고통을 분석하고 그 원인을 비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다만 조용히 그의 옆자리로 가 앉는 것, 우리가 가진 저마다의 크고 작은 힘을 타인의 눈물을 닦는 데 쓰는 것, 마침내 그 눈물이 ‘타인’ 만의 것이 아닌 ‘우리’의 것임을 깨닫는 것이 아닐까”라고 했다. 그게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그런 공감만이 세상을 옳은 방향으로 바꾸어 나가는 첫걸음이 된다.


박완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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