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부터 KSR-Ⅲ 등 개발 참여
나로호 두 차례 좌절에 암울한 기분
누리호 외형·내부 구조체 제작 땐
도자기 장인식 시험·시행착오 반복
추진제 탱크 등 기술적 난제 돌파
“시험 발사 1차, 성공 가까운 90점
2호기 조립 이어 달 탐사 등 추진”

“저희가 개발한 아이템이 문제되면 안 되니 조마조마하면서 누리호 발사를 봤는데 장관이었어요. 엔진의 대단한 힘이 전해져 절로 굉장하다, 웅장하다 감탄이 나오더라고요.”
지난달 21일 한국형 우주발사체 누리호(KSLV-Ⅱ)가 거대한 화염을 내뿜으며 비상할 때 국민들은 경탄과 자랑스러움에 압도됐다. 김광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구조팀장의 감회는 더했다. 누리호에 매달린 세월만 12년이었다. 이날 누리호가 위용을 드러내기까지 김 팀장을 포함한 항우연 연구진이 딛고 일어선 숱한 시행착오가 쌓여 있었다.
최근 전화로 만난 김 팀장은 누리호로 얻은 성과로 ‘도전을 통한 실패와 성장’을 들었다. 그는 1994년 항우연에 입사해 1999년부터 국내 최초 액체로켓인 KSR-Ⅲ 개발에 참여했다. 나로호도 겪었다. 나로호가 두 차례 실패했을 당시 그는 “굉장히 암울했다. 사고조사를 하는데 우리가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과학계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성공과 실패라는 잣대로만 나로호의 모든 것을 규정했다.
누리호를 하면서 비로소 실패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국력의 한 요소에 자존감이 있다면, 지난 10여년간 과학계 역시 자존감이 커진 듯했다.
“누리호를 개발하며 느낀 건 실패할 때 더 많이 배운다는 거예요. 누리호는 단계마다 시험하고 실패하기를 되풀이하며 하나하나 고쳤어요. 사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필수 과정이고, 이 자체가 굉장한 의미가 있는데 나로호 때는 그렇지 못했죠.”
그가 누리호에서 맡은 임무는 연료·장비가 실리는 기본 틀인 구조체 개발이다. 연료·산화제 탱크, 위성 보호덮개, 1∼3단 연결부, 위성을 지지하는 어댑터, 고압탱크, 엄빌리컬(탯줄) 등 국민이 지켜본 누리호의 외형과 내부 구조체까지 발사체구조팀의 손을 거쳤다.
가장 어려웠던 작업 중 하나는 추진제 탱크였다. 그는 “국내 개발 경험이 아예 없으니 탱크를 개발할 시설과 장비, 인력조차 없었다”고 했다.
“제작 기술은 갑자기 뚝 하고 나오는 게 아니에요. 우리 추진제 탱크 설계에 적합한 제작 방법과 공정을 구축해야 했는데, 제작 공정에서 가장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장인이 도자기 구울 때 수십 번 시도해야 하는 것과 비슷했죠.”

이 외에도 난관은 셀 수 없었다. 나로호 때 한국은 7t 고체엔진만 개발했다. 누리호는 난도가 더 높은 액체엔진인 데다 75t이다. 고생길이 훤했다. 나로호 실패 경험 탓에 내부적으로는 ‘누리호를 성공시킬 수 있을까’ 하는 물음표도 따라다녔다. 김 팀장은 “발사체 기술의 국가 간 이전이 금지돼 있다보니 잘하고 있다고 확인해줄 사람이 없었다”고 했다. 마음고생과 불안을 떨쳐낸 전기는 2018년 11월 75t 액체엔진 1개로 구성된 시험발사체 발사 성공이었다. 2016년말 발사가 한 차례 미뤄진 후 2018년 다시 한 달 연기된 끝에 성공해 더 값졌다.
“다들 하나같이 기뻐했고 ‘3단형도 가능하겠구나’ 하고 자신감이 높아진 계기가 됐어요. ‘우리가 해온 개발 방향이 맞구나’ 확인했죠.”

김 팀장은 누리호 1차 발사를 90점으로 평가했다. 그는 “이번에 위성 발사가 임무였다면 실패겠으나, 이번에는 위성 발사가 아닌 시험발사였기에 성공에 더 가깝다”고 봤다. 누리호는 내년 5월 2차 발사 예정으로, 현재 2호기가 조립 중이다. 김 팀장은 “앞으로 2030년 달 탐사 착륙선과 한국형 GPS인 KPS, 소행성 탐사 등 여러 우주 프로그램이 계획돼 있다”며 “이를 다 소화할 차기 발사체 제작이 향후 과제”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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