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의 충격 반전으로 초반부터 분위기 압도
‘쉬운 길 가는 사람이 더 큰 과실’ 역설하는 달고나
가장 가까운 사람 적으로 만드는 비정한 구슬게임
결국 힘센 사람이 승리하는 오징어 게임

‘오징어 게임’의 인기로 전 세계 곳곳에서 드라마 속 주요 게임들이 유행하고 있다. 지난 26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한국관광공사 주최로 열린 오징어 게임 체험행사에는 80명 모집에 3000명 넘게 신청했고, 유튜브와 소셜미디어(SNS) 등에서도 단체로 ‘Red and Green light’(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Dalgona’(달고나) 등을 하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중년들이 1970∼80년대 골목에서 하던 놀이들을 외국인들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이유는 황동혁 감독이 밝혔듯 “전 세계 남녀노소 누구든 30초 안에 이해할 수 있는 쉬운 게임 규칙”과 낯선 놀이가 주는 신선함 때문이다. 드라마에서는 동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단순하고 즐거운 게임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실수하거나 탈락하면 그 자리에서 즉결 심판당해 충격과 공포가 배가된다.
오징어 게임에 나온 총 6가지 게임은 인간의 욕망과 이기심, 잔인한 본성을 적나라게 드러내고, 냉혹한 현실 세계를 투영하는 장치로 활용됐다. 진행요원들은 똑같은 초록색 유니폼에 이름이 아닌 번호표를 단 참가자들에게 ‘평등’과 ‘공정’을 역설한다. 하지만 설계자들의 편의와 목적에 따라 본래의 룰을 바꾸고, 진행요원과 참가자들의 편법과 일탈로 절차적 공정성에 균열이 가면서 ‘공정’은 그저 혹세무민의 수사에 그칠 뿐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계급 간 갈등과 공정에 대한 믿음을 신랄하게 비튼 오징어 게임 속 데스 게임에 내포된 의미를 박종익 강원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와 함께 사회심리학적으로 풀어봤다.
◆딱지의 의미와 첫번째 게임이 ‘무궁화∼’인 이유
드라마에서 기훈(이정재)을 비롯한 참가자들이 처음 하는 게임은 사실상 딱지치기다. 공유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에게 접근해 10만원을 걸고 딱지치기를 제안한다. 그 제안을 수락하는 순간 딱지를 넘기든 못 넘기든 목숨을 건 게임에 끌려들어 가게 된다.

(박종익) “딱지는 평면적, 2차원적이다. (게임에서) 이기고 지는 두 가지 (결과)밖에 없다. ‘무승부’가 없다는 의미다. 본격적으로 오징어 게임을 시작하기 전에 ‘이 게임은 무승부가 없다. 이기거나(살거나), 지거나(죽거나) 둘 중 하나다’라는 흑백논리를 암시한 것이다.”
공식적인 첫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시작되고 예상치 못한 전개에 참가자들만큼이나 시청자들도 충격을 받는다. 황동혁 감독은 “가장 많은 사람이 동시에 할 수 있는 놀이, 가장 단순한 형태의 놀이, 동시에 가장 충격적 반전 엔딩이 있을 수 있어서 첫 번째 게임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박종익) “드라마를 보면서 점점 (참가자들이) 죽는 것에 익숙해지게 된다. 죽음에 대해 보통 처음이 가장 공포스럽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을 준다는 의미에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통해 초반에 분위기를 압도한 것이다.”
술래로 등장한 거대 로봇 ‘영희’가 눈동자를 굴리며 참가자들의 움직임을 살피는 모습은 빅 브러더 사회에서 기계에 종속당하고 감시당하는 인간의 모습을 떠오르게 한다.

◆현실을 역설적으로 뒤집은 달고나
전 세계 국자를 태우며 인기를 끌고 있는 ‘달고나(설탕 뽑기)’는 가장 아이러니한 게임이다. 현실에서의 설탕 뽑기는 어려운 모양일수록 그 대가로 받는 보상, 즉 사탕의 크기가 커졌다. 나름 엄청난 집중력과 노력을 쏟아야 어려운 달고나를 성공하고 그 대가로 큼지막한 잉어, 거북선 모양의 노란 사탕을 받는 것이다. 반면 드라마에서는 삼각형처럼 쉬운 모양을 골라야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
“사실 그 사탕은 맛이 있어서라기보다 ‘해냈다’는 성취감의 산물이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그걸 완전히 패러독시컬하게(역설적으로) 뒤집었다. ‘어려운 걸 하면 그만큼 인생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암시를 하는 것 같다. 살다 보면 복불복이 있고, 쉬운 걸 선택하는 사람과 어려운 걸 선택하는 사람이 있는데 결과는 정반대라는 것. 쉬운 트랙을 가는 사람들이 나중에 더 많은 과실을 따 먹는 것, 어떻게 보면 인생이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닐까.”
첫 번째 게임의 잔인한 룰을 눈치채지 못했던 참가자들의 태도도 두 번째 게임에서부터 달라진다. 무궁화 게임 때 알리(아누팜 트리파티)는 위험을 무릅쓰고 넘어진 기훈을 붙잡아 살려주고, 상우(박해수)도 기훈을 응원한다. 하지만 두 번째 게임의 변형된 룰을 미리 알게 된 상우는 기훈을 외면하며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가장 비정한 게임 ‘구슬 놀이’
세 번째 게임부터 참가자들은 노골적으로 약육강식의 본능을 드러낸다. 경쟁자가 죽어야 자신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을 깨닫고 여자와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을 무리에서 쫓아낸다. 그리고 세번째 게임이 줄다리기라는 사실이 공개되자 환호하지만, 결과는 예상을 빗나간다.
“줄다리기가 전체 게임 중 가장 정상적이고 인간적인 게임이었다. 힘 센 사람들이 많이 있는 팀이 이길 것 같지만, 사실 힘 만이 아닌 머리(전략)와 협력이 필요하다는 걸 보여준다. 세상이 힘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라 노력과 협력으로 이길 수도 있다는 희망을 주려고 한 것 같다. 하지만 토너먼트 형식으로 이긴 팀은 올라가고 지는 팀은 죽는다는 것은 사회에서 1등만 대접받고 승자만 살아남는 생존 방식을 보여준게 아닐까.”
네번째 구슬 놀이에서 주요 참가자들의 서사와 내적 갈등이 극대화한다. 가장 친하고 의지할 수 있는 ‘내 편’을 골랐는데 그를 이겨야, 즉 그가 죽어야 자신이 살 수 있는 상황에서 참가자들 대부분은 양보나 희생보다는 거짓말과 배신을 택한다. 기훈은 살뜰히 챙겨왔던 오일남(오영수)을, 상우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알리를 배신한다.
“가장 비정한 게임이자, 가장 뒤통수를 쳤던 게임이다. 부부가 한 편이 됐는데 상대방을 죽이고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남편이 살아남았지만 결국 극단적 선택을 한다. 이런 상황은 사회 시스템의 문제지, 개개인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즉 이런 식의 서바이벌 게임에 억지로 참여해서 적이 아닌 동지와 경쟁하는 것, 예를 들어 직장에서 가장 열심히 같이 일했던 동료가 적이 되는 경우가 꽤 많은데 구슬 게임은 우리 사회의 그런 단면을 적나라게 보여준다. 외국인들도 이 지점에서 많이 우는 것은 ‘우리 현실이구나’라고 공감하기 때문이다.”

◆운도, 협력도 불허...오로지 힘으로 승부 가르는 게임의 규칙
다섯번째 징검다리 게임은 두 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확률 게임이자, 협력과 집단 지성을 활용할 수 있는 게임이다.
“18개의 다리를 다 맞출 가능성은 2의 18승, 20여만 분의 1 정도 된다. 운 만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걸 암시한 것. 또, 클리셰처럼 강화유리를 감별할 수 있는 유리전문가가 등장한다. 이 사람과 같이 한다면 모든 사람이 살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개개인이 협력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우리 사회가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일 수도 있다. 결국 그 안에서 상대방을 불신하고 죽거나 죽이는, 처음에 등장한 딱지치기처럼 극단적인 선택밖에 없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치 같다.
드라마 타이틀이자 마지막 관문은 왜 오징어 게임일까.
“오징어 게임은 전략과 전술도 중요하지만, 결정적으로 힘이 센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 기훈과 상우에게 쥐어진 칼은 힘을 의미한다. 5개의 게임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든 간에 마지막에는 결국 힘센 놈이 승리한다는 약육강식이다. 여기서 흙을 뿌리는 행위는 단순히 신체적인 힘뿐만 아니라 어떤 계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힘도 있다는 것을 내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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