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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9 선언’으로 ‘3金’ 꺾고 대권 잡아… 북방외교 초석 마련 [노태우 前 대통령 별세]

입력 : 2021-10-27 06:00:00 수정 : 2021-10-27 02:4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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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 반란 성공 후 본격적 2인자 수업
“보통 사람, 믿어주세요” 메시지로 유명
여소야대 정국불안에 ‘3당 합당’ 승부수

재임 중 5共 청산하며 전두환과 마찰
퇴임 후 수천억 비자금 5·18진압 ‘단죄’
사면 뒤 건강 악화… 암울한 말년 보내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군사정권과 문민정부를 잇는 과도기의 대통령이자 민주화 후 ‘첫 군인 대통령’이었다. 그는 엘리트 출신 장성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수직 상승을 거듭하다 집권 후 조기 레임덕에 빠지고 퇴임 후 옥고를 치르는 등 파란만장한 영욕의 삶을 살았다.

노 전 대통령은 1979년 12·12 쿠데타를 통해 신군부 핵심 세력으로 한국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전두환 정권의 2인자에 오른 그는 1987년 여당인 민주정의당 대표를 거쳐 13대 대통령으로 권력의 정점에 섰다. 공과가 뚜렷하게 엇갈린다. 민정당 대표 시절 6·29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전격 도입했고, 전두환 정권 청문회를 개최하는 등 민주화 진전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임 당시 북방외교와 통일 분야에선 혁혁한 성과도 거뒀다. 퇴임 후 천문학적 액수의 비자금이 드러났고,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으로 옥살이를 하는 등 부정적인 평가 또한 적지 않다.

◆12·12 쿠데타로 군인에서 정치인으로

노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된 1979년 10·26사태 이후 그해 12월 12일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함께 쿠데타를 단행해 군부를 장악했다. 쿠데타 성공 후 수도경비사령관을 맡은 노 전 대통령은 1980년 5월 17일에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비상계엄 전국 확대를 주장해 자정부터 전국에 계엄령을 내렸다. 이 조치는 다음 날 광주에 계엄군을 투입하는 계기로 이어졌다. 노 전 대통령은 1981년 7월 육군대장 진급 후 예편한 뒤 곧바로 민정당 당무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정무 제2장관과 남북고위급회담 수석대표,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면서 ‘권력 2인자’ 수업을 받았다.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6·29선언 뒤 발표

1987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으로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거세지자 전두환 정권은 개헌 논의를 일절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4·13 호헌 조치를 단행했다. 전두환 정권은 정권이양 계획을 밝혔지만 민주화운동은 멈추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직선제 개헌과 김대중 사면복권 및 구속자 석방 등을 담은 시국수습 방안인 6·29선언을 발표했다. 노 전 대통령은 최초 직선제 선거로 치러진 그해 12월 제13대 대통령 선거에서 “나, 이 사람 보통사람입니다. 믿어주세요”라는 메시지로 승부를 걸었다. 당시 대선에서 김영삼·김대중·김종필 후보를 모두 누르고 당선됐다.

◆공산주의 국가와 관계 개선 등 북방외교 성과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소련 해체와 동·서독 통일 등 대외 정세가 급변하는 와중에 러시아·중국과 수교하는 등 북방외교에 적극 나선 것은 여야를 떠나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대목이다. 1989년 헝가리를 시작으로 공산권 국가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1990년 소련, 1992년 중국과 수교했다. 대북정책에서는 1988년 7·7선언으로 ‘민족 자존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발표했고, 1990년 남북한이 동시 유엔에 가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도 했다.

 

◆여소야대 속 5공 청산과 기습적 3당 합당

1988년 2월25일 노태우정부가 출범한 뒤 치러진 총선에서 여소야대 국회가 들어섰다. 11월에 열린 국회 5공 청문회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신군부의 폭력 진압과 전두환 정권의 비자금 등 그동안 감춰졌던 비리가 드러났지만, 광주시민들에게 발포 명령을 내린 책임자를 규명하지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은 1990년 여당인 민정당과 야당인 김영삼(YS)의 통일민주당, 김종필(JP)의 공화당을 합치는 기습적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을 탄생시키며 정국을 여대야소 국면으로 전환했다.

◆5000억대 비자금으로 전직 대통령 중 첫 구속

14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김영삼 대통령의 금융실명제 단행(1993년)은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은닉 의혹이 세상에 드러나는 단초가 됐다. 민주당 박계동 의원은 1995년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신한은행 서소문지점에 예치된 110억원 계좌 조회표를 제시하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400억원설’을 폭로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자 노 전 대통령은 재임기간 중 5000억원을 기업으로부터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해 1심에서 비자금 수수와 뇌물 조성 혐의 등으로 구속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수감되며 전직 대통령 중 처음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았다.

◆특사 이후 건강 악화, ‘현대사 진실’ 끝내 침묵

5·18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광주 5·18 사건에 대한 재수사가 진행됐다. 노 전 대통령은 12·12 쿠데타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 비자금 사건에 대한 대법원 선거 공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28억원을 선고받았다. 1997년 특별사면으로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석방됐다. 자유의 몸을 얻었지만 이미 건강은 약해진 상황이었다. 그는 세상을 뜨는 순간에도 6·29선언의 주체, 12·12와 5·18의 진실, 3당 합당 과정, 불법 비자금의 용처 등 베일에 가린 현대사의 진실에 대해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아들 재헌씨가 2019년부터 부친을 대신해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에도 5·18민주묘지를 방문해 헌화하고 사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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