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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아프면 쉴 권리… ‘상병수당’ 도입 속도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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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4 23:22:15 수정 : 2021-10-14 23: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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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갑자기 아프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노동 중단으로 소득이 줄어들 수 있다. 특히 저소득층의 경우 빈곤층으로 추락할 수 있다. ‘오징어 게임’의 성기훈 엄마처럼 치료할 시기를 놓치면 질병은 악화된다. 목숨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자의 1년 중 병가 일수는 한국이 가장 낮다. ‘아파서 쉬면 잘린다’는 공포가 너무 크다. 코로나19 위기 후에야 감염병 관리를 위한 치료기간 보장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높아졌다.

왜 우리는 ‘아프면 쉴 권리’에 대한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일까. 한국에서는 업무와 관계없는 부상, 질병으로 인한 소득 손실을 보전해 주는 상병수당이 없기 때문이다. 유럽 복지국가는 100년 넘도록 상병수당을 운영했다. 1883년 독일 총리 비스마르크가 세계 최초로 ‘상병수당법’을 도입했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한국과 미국(뉴욕, 캘리포니아 등은 도입)을 제외하고 모든 국가가 운영한다. 국제노동기구(ILO)의 1969년 기준을 보면, 최저 52주 이상 모든 노동자에게 이전소득의 60% 이상을 제공하되, 노동자가 부담하는 보험 기여액은 50% 이하로 제한했다. 하지만 2020년에서야 한국 정부는 시범사업을 거쳐 도입하기로 결정했다. 너무 늦어서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속도를 내야 할 사회적 과제이다.

김윤태 고려대 교수·사회학

그러면 한국에 적합한 상병수당은 무엇일까. 덴마크, 호주, 뉴질랜드는 조세로 운영하는데 의료보장제도가 조세로 운영되는 나라들이다. 독일, 프랑스 등 유럽 국가는 사회보험형으로 운영한다. 별도의 상병보험을 만들기도 하고, 건강보험 또는 고용보험에 귀속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보편적인 건강보험제도에서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사무직, 생산직 임금노동자에 적용한 후 자영업자,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종속노동자로 확대해야 한다. 대부분 국가처럼 수급 대상의 질병을 한정하지 않는 한편 대기 기간, 진단서, 인증 절차를 통해 신뢰를 높일 수 있다.

상병수당 도입을 위해서 가입 범위, 보장 기간, 보장 수준, 소득 대체율, 보험료율과 분담률 등 이슈를 결정해야 한다. 특히 법정병가제도가 없기 때문에 상병수당 도입에 따른 재정부담이 쟁점이 될 수 있다. OECD 회원국의 2015년 기준 국내총생산 대비 상병수당 지출 규모가 0.07~1.1% 수준이다. 최근 건강보험공단연구원의 연구용역은 상병수당 도입 시 최대 1조7000억원(국내총생산의 0.1%)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노동시간이 세계 최장이고 병원 입원 일수가 OECD 평균의 2배라는 점을 고려하면 많은 재정이 필요할 수 있다. 민영보험과 관련된 의료비의 합리적 제도개혁도 중요한 과제이다.

유엔과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랫동안 상병수당을 보편적 건강보장의 핵심요소로 보고 사회보장 최저선에 포함할 것을 요구했다. 뒤늦게나마 상병수당 도입에 속도를 내기 위해서는 국회의 협상과 노사정 대화를 통한 사회적 대타협이 시급하다. 여야 대선후보도 상병수당을 반드시 공약에 반영하기 바란다. 세계 경제대국 10위와 인터넷 보급 1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프면 쉴 권리’가 아니겠는가. 건강이 최고의 국부이다. 건강이 없다면 돈과 인터넷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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