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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엽의고전나들이] 원수형제를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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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4 23:25:44 수정 : 2021-10-14 23: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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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사이가 좋지 않은 형제 이야기를 자주 접한다. 똑같은 부모에게 나서 똑같은 가정환경에서 자랐는데 어떻게 그럴까 싶지만,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사이가 안 좋은 것이다. 꼭 닮은 사람들이 부모가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느라 갈등이 증폭된다. 이러한 갈등이 극대화되면 형이 동생을 죽인 ‘카인과 아벨’처럼 ‘원수형제’ 테마에까지 이르고 만다.

‘흥부전’의 놀부와 흥부 형제 이야기도 그런 범주에 들어가는데, 놀부는 악하고 흥부는 착하다는 도식만으로는 단순화하기 어려운 데 작품 해석의 어려움이 있다. 대체로 놀부는 일만 하고 흥부는 공부만 한 것 같은 차별과 편애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만 해서도 사람의 도리를 깨치고 공부만 해서도 경제적인 면이 해결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놀부의 입장에서 흥부는 놀고먹기나 하는 구제불능의 인간인 셈이다. 실제로 놀부의 생각이 적중이라도 한 듯이 흥부가 형에게 쫓겨나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흥부전’의 진면목은 그다음에 일어난다. 많은 식솔들을 거느린 가장으로 굶주림을 참다못한 흥부는 다시금 놀부를 찾아갔다. 자신의 행실을 반성하기도 하면서 선처를 호소했는데 돌아온 것은 더 심한 모욕이었다. 형수에게서 밥주걱으로 뺨을 맞으면서도 뺨에 붙은 밥알에 희색을 보이는 참상이 펼쳐진다. 그렇게 쫓겨난 흥부는 다시 정신을 가다듬고 새로운 행보를 펼쳐나간다. 구걸이 아닌 노동에 나서는 것인데 김매기, 풀베기, 술짐지기 등을 닥치는 대로 하고, 심지어 매품까지 팔아보려 한다. 흥부의 처 역시 밭매기, 김장하기, 방아찧기, 삼삼기 등을 하며 한때도 쉬지 않고 밤낮으로 돈벌이에 나선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처참해서 여전히 굶주리고 자결까지 생각할 정도의 극한 상황으로 내몰린다.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비판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처음 쫓겨나서 무대책으로 시간을 보내던 흥부에서 그쳐야 한다. 두 번째로 쫓겨나 극한의 고역을 감내한 흥부에게까지 들이댈 일은 아닌 것이다. 옛이야기답게 이 문제해결의 물꼬는 제비가 물고 온 박씨에서 나왔지만, 현실적으로 보자면 흥부의 각성과 놀부의 개심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가 될 듯싶다. 혹시라도 지금 누리는 것을 당연한 듯 편하게 받아쓰고만 살지 않았는지, 누군가와 함께 나누어야 할 무언가를 독차지하는 파렴치함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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