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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예술·광기가 버무려진 비극… 빛과 어둠 속 인생을 노래하다

입력 : 2021-10-14 20:09:04 수정 : 2021-10-14 20: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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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BIFF 갈라작 뮤지컬 영화 ‘아네트’

칸 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 수상작
부산국제영화제 취재진·관객 큰 관심
영화 대사 80% 이상 노래로 표현 주목

카락스 감독, 딸 ‘아네트’ 꼭두각시 설정
“3D 생각하다 감정적 교류 어려워 변경”
“작품 찍으며 아버지로서의 자신 돌아봐”
영화 ‘아네트’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 헨리 맥헨리(왼쪽)가 오토바이를 타고 기자들과 인터뷰 중인 오페라 여가수 안 델그레코를 데리러 온 장면.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쇼가 시작되면 숨 쉬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영화 ‘아네트’에 출연한 레오스 카락스 감독 대사 중)

독보적이다. 프랑스 천재 감독으로 불리는 레오스 카락스(사진)가 9년 만에 내놓은 신작 영화 ‘아네트’는 예술성과 대중성을 모두 갖췄다. 영화의 전개와 아름다운 연출은 보는 내내 관객을 소름 돋게 만들 정도다. ‘아네트’는 미국 록 밴드 ‘스파크스’가 공동 각본 및 음악을 맡고 애덤 드라이버, 마리옹 코티아르가 주연한 뮤지컬 영화로, 올해 칸 영화제 개막작이자 감독상 수상작이다. 우리나라에서는 27일 개봉한다.

이 영화는 사랑과 예술, 그리고 광기가 버무려진 비극이다.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헨리 맥헨리(드라이버)와 오페라 여가수 안 델그레코(코티아르)는 완벽한 앙상블로 세상의 관심을 끄는 유명한 연인이다. 예술의 성지 로스앤젤레스(LA)에서 두 사람은 대조된다. 관객 앞에서 거칠고 외설적인 농담을 일삼는 헨리와 우아한 목소리로 아리아를 부르다 가련한 자태로 숨을 거두는 안. 절정의 기량을 뽐내는 예술인들이 그렇듯 이들 역시 광기와 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무대에는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안은 헨리와 결혼한 이후 더욱 빛나지만, 헨리는 점차 그 빛에 자신이 가려진다는 것을 느끼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오페라 여주인공 안이 죽음으로 절정을 맞이하는 무대를 뒤에서 바라보는 헨리의 눈빛에는 그리스에서부터 시작한 비극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그 사이 태어난 딸 ‘아네트’는 헨리가 아닌, 안의 모든 것을 빼닮았다.

◆천재가 만든 뮤지컬 영화는 이런 것

지난주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국내에 첫선을 보인 ‘아네트’는 현장에서 취재진과 관객의 큰 관심과 갈채를 받았다. 영화제 측은 “빌헬름 무르나우의 무성영화에서 보았던 배우의 제스처, 판타스틱 영화의 위협적인 그림자들, 자크 드미의 비현실적이고 현란한 색채, 침묵과 음악, 추함과 아름다움이 어우러져 완성된 록 오페라 ‘아네트’는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올해 최고의 영화”라고 소개했다.

이 영화는 대사의 80% 이상이 노래로 이뤄져 있다. 배우들은 오토바이 운전을 하거나 수영을 하는 장면, 심지어 베드신의 신음마저 노래로 표현했다. 10일 부산 KNN시어터에서 기자회견을 가진 카락스 감독은 대사 대부분을 음악으로 처리한 이유에 대해 “영화에 비현실적인 이미지를 줄 수 있고 나아가 제약 없이 원하는 바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라고 답했다.

‘아네트’는 원안과 음악을 맡은 밴드 ‘스파크스’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스파크스는 이 영화를 위해 15곡을 만들었고, 카락스 감독과 함께 직접 영화에 출연하기도 했다. 카락스 감독은 첫 뮤지컬 영화 데뷔에 대해 “항상 음악과 함께했다. 음악은 중요하다. 음악을 어릴 때부터 했지만 잘하지 못했다. 음악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영화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스파크스의 음악을 이미 어릴 때부터 들어왔기 때문에 작업하면서 편안했다”고 설명했다.

‘피노키오’를 연상케 하는 설정은 기묘한 영화 분위기로 관객을 끌고 들어가는 중요한 요소다. 딸 ‘아네트’를 꼭두각시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카락스 감독은 “아네트를 영화에 표현할 방법으로 처음에는 3D 이미지를 생각했었지만, 배우들이 아네트하고 어떤 감정적인 교류를 할 수 없어서 포기했다. 그래서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는 분들을 찾았고 작업을 같이했다”고 말했다.

◆가족을 다룬 비극적 서사시

표면적인 주제가 예술에 맞춰져 있다면 영화의 내면에는 ‘가족’이 자리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사이에 애정은 순도에서부터 연인 사이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피로 이어진 관계는 영화 속 비극적 서사를 더욱더 끈적하게 만든다.

실제로도 카락스 감독은 기자간담회에서 남다른 딸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이 영화를 딸에게 바친다고 말한 그는 “최근 두 작품을 딸과 함께 출연했는데 후속작은 가족과 관련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면서 “아버지가 되면서 아버지에 관한 것을 만들고 싶었고 나 자신도 아네트를 찍으며 내가 딸에게 나쁜 아버지는 아닌가 하고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오른손에 있는 문신도 딸과 관련된 것이라고 카락스 감독은 밝혔다. 그는 “이 문신은 저와 딸이 좋아하는 프랑스 만화 캐릭터인 땡땡이다”라면서 “또 다른 문신은 딸의 이름을 러시아어로 새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감독의 영화를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카락스 감독은 “사실 그동안 많은 영화를 봤기 때문에 더 이상 영화는 잘 보지 않는다. 나쁜 영화를 보게 되면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래서 신뢰할 수 있는 작품만 보려고 한다”며 “프랑스에 봉쇄되어 있는 동안 불면증을 겪었는데 그 당시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많이 봤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홍상수 감독은 일 년에도 몇 편씩 다작을 하고 있는 데,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거기 나오는 배우들도 상당히 좋다. 연기를 아주 잘하시는 배우분들이 있었다. 홍상수 감독과 작업하는 배우들을 관심 있게 봤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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