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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6·25 영웅의 넋, 의정부 ‘캠프 레드 클라우드’ 깃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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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3 08:00:00 수정 : 2021-10-12 19:4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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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 원주민 후손, 6·25전쟁에 참전
중공군 기습 홀로 막다 전사 ‘살신성인’
명예훈장 추서… 오마 브래들리가 수여
6·25전쟁 참전용사인 미첼 레드 클라우드 미국 육군 상병(1925∼1950).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엔 해병대원으로서 태평양 전쟁에서 싸웠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경기 의정부에 ‘캠프 레드 클라우드(Red Cloud)’란 이름이 붙은 주한미군 기지가 있었다. 지금은 평택에 새로 지은 캠프 험프리스로 옮겨간 미 육군 제2보병사단이 1957년부터 2018년까지 주둔했던 곳이다.

 

미국 국방부가 11일(현지시간) 홈페이지를 통해 명예훈장 수훈자 미첼 레드 클라우드(1925∼1950) 미 육군 상병의 생애를 집중 조명해 눈길을 끈다. 명예훈장은 미국에서 군인에게 주어지는 최고 영예다. 레드 클라우드는 6·25전쟁 당시 지금의 북한 지역에서 중공군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는데, 그를 기리고자 의정부의 주한미군 기지를 캠프 레드 클라우드라고 명명했다는 설명이다.

 

레드 클라우드는 1925년 위스콘신주(州)에서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의 후손으로 태어났다. 아직 10대 고교생이던 1941년 그는 부친의 허락을 얻어 학교를 그만두고 해병대에 입대했다. 얼마 뒤 일본의 하와이 진주만 공습으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에 뛰어들었고, 레드 클라우드도 해병대원으로서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군과 싸웠다.

 

과달카날, 오키나와 등 2차대전을 통틀어 가장 치열했던 전선에 그가 있었다. 과달카날에선 말라리아에 걸렸으나 병원 후송을 거부한 채 끝까지 전투에 임했고, 오키나와에서도 숱한 부상을 딛고 일본군의 전멸을 지켜봤다.

 

전후 제대한 레드 클라우드는 민간인으로서 삶에 지루함을 느끼다 1948년 10월 현역으로 재입대했다. 이번엔 해병대 대신 육군을 택했다. 미 육군 제24보병사단 소속으로 패전국 일본 점령 임무에 투입됐던 레드 클라우드의 운명은 1950년 6월 25일 이웃나라 한국에서 전쟁이 터지며 전환점을 맞는다. 24사단이 한반도로 건너가며 그는 2차대전에 이어 또 실전과 마주했다.

 

24사단은 1950년 9월 인천상륙작전 성공 이후 북진 대열에 합류했고, 레드 클라우드가 속한 중대는 그해 11월 평안도 청천강 북안 123고지까지 진출했다. 당시는 이미 중공군이 북한 편에서 참전한 뒤였다.

 

6·25전쟁 당시 중공군과 싸우다 전사한 미첼 레드 클라우드 미국 육군 상병을 대신해 그 어머니(가운데)가 1951년 4월 명예훈장을 받고 있다. 훈장을 전달하는 이(왼쪽)는 2차대전 영웅이자 당시 미군 합참의장이던 오마 브래들리 원수다. 미 국방부 홈페이지

1950년 11월 5일 레드 클라우드는 123고지 전방에 매복해 중공군 움직임을 탐지하는 임무를 맡았다. 어두운 밤 중공군의 기습 시도를 포착한 그는 중대 본부로 돌아가 이 사실을 알리는 대신 혼자서 적진에 총을 쏘는 길을 택했다. 총성에 놀란 동료 장병들이 긴급히 잠에서 깨 대피할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였다.

 

자연히 레드 클라우드는 중공군 선발대의 표적이 됐다. 여러 발의 총을 맞고 더 이상 서 있기가 힘들어지자 자신의 몸을 나무에 묶은 채 싸움을 이어갔다. 결국 중공군의 공격 감행은 실패로 돌아갔다. 나중에 전우들이 그의 시신을 발견했을 때 최소 8발의 총상을 확인했다. 레드 클라우드 앞에는 그가 쏜 총에 맞아 죽은 중공군 시체가 쌓여 있었다.

 

미 육군은 “레드 클라우드가 중공군의 진격을 충분히 지연시켜 부대 방어를 재정비하고 강화함으로써 나머지 부대원들의 생명을 구했다”고 평가했다. 명예훈장 추서가 결정됐고 이듬해 4월 이제는 세상을 떠나고 없는 레드 클라우드를 대신해 어머니가 훈장을 받았다. 2차대전 영웅이자 당시 미군 합참의장이던 오마 브래들리 원수가 직접 훈장을 어머니에게 전달했다.

 

레드 클라우드는 부산 유엔군 묘지에 묻혔다가 1955년 고향인 미국 위스콘신주로 돌아갔다. 미군은 1957년 의정부 주한미군 기지에 캠프 레드 클라우드란 이름을 붙인 데 이어 1999년에는 새로 취역한 해군 수송함도 그의 이름을 따 ‘USNS 레드 클라우드’라고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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