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을 방문 중인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11일(현지시간) 특파원들과 만나 “남북 간 연락채널이 다시 소통이 됐고 (미국 측과) 남북관계나 북·미 관계를 한 번쯤 점검하고 전반적으로 협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보고 있다”고 했다.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의 긍정적인 반응을 기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종전선언을 포함해 같이 논의를 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원된 것을 계기로 남북, 북·미 대화 재개 방안을 미국과 집중 논의하겠다는 의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유엔총회에서 중국을 포함한 ‘4자 종전선언’을 제안한 이후 정부 관심은 온통 내년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정상회담 성사에 쏠려 있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지난달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북한이 베이징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하겠다고 했다. IOC가 도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북한의 올림픽 참가 자격을 2022년 말까지 정지시킨 것을 의식한 언급이다. 이달 초 독일을 방문한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우리가 합의를 이루고 기쁜 마음으로 함께 손을 잡고 베이징올림픽으로 가는 게 좋지 않겠나”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북한이 종전선언과 함께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언급하자 한껏 고무돼 어떻게든 ‘남북 이벤트’를 성사시키려 안달이 난 모양새다. 지금이 그럴 때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그제 남한이 군사장비 현대화로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고 비난하며 국방력 강화를 핵심 국가정책으로 천명했다. 그는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 기념연설에서 “강력한 군사력 보유 노력은 주권국가가 한시도 놓치지 말아야 하는 당위적인 권리이고 중핵적인 국책으로 돼야 한다”고 했다. 김성 주유엔 북한대사도 “우리는 국가안보를 위해 자위적인 (전쟁)억지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남한의 대북 억지력 강화를 구실로 핵·미사일 능력을 고도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문재인정부 임기는 7개월도 남지 않았다. 여당 대선 후보까지 선출된 마당에 정부가 성사 가능성이 낮은 일을 벌이는 건 온당치 않다. 더욱이 북한이 국방력 강화를 노골적으로 강조하는 상황에서 종전선언과 베이징올림픽을 향해 내달리다간 자칫 한·미 간에 불협화음을 일으킬 수 있다. 임기 말 성과를 노린 ‘평화 이벤트’ 집착은 후유증을 낳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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