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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렉시트는 안 돼”… 폴란드 전역 대규모 항의시위

입력 : 2021-10-11 19:11:57 수정 : 2021-10-11 22: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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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결정에 정부·EU ‘대립각’

바르샤바 시위에만 10만명 참여
헌재 “헌법이 EU조약보다 우선”
우파 집권 이후 EU와 갈등 잦아
野 “시민권·민주주의 침해” 반발
총리 “EU에 잔류” 우려 불식 나서
성난 시민들 10일(현지시간) 폴란드 바르샤바 옛 왕궁 앞 중앙광장에서 시민들이 대형 폴란드 국기, 그리고 유럽연합(EU) 깃발을 들고 폴란드의 EU 탈퇴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바르샤바=AFP연합뉴스

동유럽 폴란드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뜻하는 ‘브렉시트’에 이은 ‘폴렉시트’(폴란드의 EU 탈퇴)에 대한 우려에 시민 수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폴렉시트 우려를 촉발한 폴란드 헌법재판소 결정에 폴란드 정부와 EU 간 갈등도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10일(현지시간) 폴란드 전역에선 폴렉시트에 반대하고 EU 잔류를 지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 수도 바르샤바 시위에만 약 10만명이 참여했다. 시민들은 EU기와 폴란드 국기를 흔들며 “우리는 (EU에) 남는다”고 외쳤다.

이날 시위는 지난 7일 폴란드 헌재가 자국 헌법이 EU 조약과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 결정의 일부보다 우선하며 EU에 법적 주권을 넘겨주지 않았다고 판결한 데 따른 것이다. 헌법재판관 14명 중 2명만 반대의견을 냈다.

올봄 ECJ는 대법관 임명에 입법부와 행정부의 정치적 영향력을 강화한 폴란드 정부의 조치가 사법부 독립 원칙을 명문화한 EU법을 위반한다며 제동을 걸었다. 이에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가 헌재에 EU법이 자국 헌법보다 우위에 있는지 여부를 가려 달라고 요청했다.

EU 회원국 지도자가 헌재를 통해 EU 조약에 의문을 제기한 건 EU 역사상 처음이다. 폴란드는 2004년 EU에 가입했다.

시위를 주최한 야당 시민플랫폼 당수이자 전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인 도날트 투스크는 “헌법을 위반하는 여당 법과정의당(PiS) 명령을 따르는 사람들로 구성된 가짜 헌재가 우리 조국을 EU 밖으로 끌어내기로 결정했다”고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우리는 왜 그들이 EU를 떠나려 하는지 알고 있다”며 “시민의 권리와 민주주의 원칙을 침해하기 위한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AP통신은 이번 시위에 대해 “1989년까지 수십년간 공산주의 통치를 견뎠던 폴란드에선 경제적 변화와 여행의 자유를 가져온 EU 가입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높다”며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현 정부에 비판적인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도 그단스크에서 시위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폴란드 헌재 결정으로 폴란드와 EU 간 갈등은 극에 달했다. 이번 결정은 EU법이 특정 사법 분야에서 회원국 개별법에 우선한다는 EU의 핵심원칙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라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우리의 조약은 매우 명확하다. EU법은 헌법 조항을 비롯한 국가법에 우선한다”며 폴란드 헌재 결정에 깊은 우려를 표했다. 유럽의회 제1당인 유럽국민당(EPP)도 “EU에 대한 공격”이라고 비판했다.

독일과 프랑스 정부도 외무장관 명의로 공동성명을 내고 “폴란드는 EU 회원국으로서 EU의 가치와 원칙을 따라야 할 도덕적·법적 의무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폴란드 정부와 같은 우파 민족주의 성향인 헝가리 정부만 환영 입장을 냈다.

폴란드는 2015년 우파 정부가 들어선 뒤 지난 6년간 사법부의 독립, 언론의 자유 등을 놓고 EU와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왔다. EU는 특히 집권당인 법과정의당이 사법부를 정치화해 민주적 견제와 균형이 약화되고 있다고 본다. 영국 가디언은 “폴란드 정부는 여당 충성파들로 헌재를 채웠을 뿐 아니라 법관들이 EU 법원에 사건을 회부하는 것을 포함해 판결 내용으로 징계받을 수 있는 제도도 도입했다”고 지적했다.

다만 법과정의당은 EU에서 탈퇴할 계획은 없다는 입장이다. 모라비에츠키 총리도 “폴란드는 앞으로도 EU에 있을 것”이라며 폴렉시트 우려를 불식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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