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2.2배 채무 불구 재정적자 확대”
자민당 정조회장 “어처구니 없는 소리”

일본 관료 그룹의 최고 수장 격인 재무성 사무차관이 현 정권과 여야 정치권의 선심성 경제 대책과 관련해 일본이 침몰 직전의 타이타닉호(號) 같다고 비판하고 나서 파문이 일고 있다.
야노 고지(矢野康治·59·사진) 재무성 사무차관은 8일 발매된 월간 문예춘추(文藝春秋) 기고를 통해 “최근 선심 경쟁과 같은 정책론을 들으면 할 말을 하지 않으면 비겁하다고까지 하는 생각이 든다”며 1166조엔(약 1경2476조2000억원)에 달하는 채무(국가 장기채무+지방채무)로 인한 국가재정 파탄을 경고했다.
야노 차관은 특히 자민당 총재 선거 과정과 중의원(하원)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서 쏟아지는 선심성 경제대책을 비판했다. 여야 정책을 로마 시대 우민화 정책의 상징인 빵과 서커스에 비유하면서 일본이 선진국 중 최대 규모인 국내총생산(GDP)의 2.2배에 달하는 채무가 있음에도 재정적자를 확대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수십조엔(수백조원) 규모의 경제대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지원금 △소비세율 인하 문제를 거론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는 수십조엔 규모의 경제대책을 약속했으며, 자민당도 코로나19 지원금 추가 지급을 추진하고 있다. 소비세율 인하는 야당이 주장하고 있다.
야노 차관은 “현재 일본 상황은 비유하자면 타이타닉호가 빙산을 향해 돌진하는 것 같다”며 “빙산(채무)은 이미 거대함에도 이 빙산을 더욱 키우면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일본은 침몰해 버린다”고 했다.
각 부처 수장을 국회의원이 맡는 일본에서 사무차관은 직업 공무원인 관료 출신의 톱이다. 그중에서도 재무성은 ‘정부 부처 중의 부처’로 불려 재무성 사무차관은 최고 관료로 인식된다. 일본 관료가 본인 발언이나 미디어 기고를 통해 정권이나 정치권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야노 차관은 기고로 인한 파문을 예상했는지 “재무성 인간이 애만 태우면서 침묵하고 있으면 안 된다. 나는 그것을 부작위(不作爲)의 죄라고 생각한다”며 “국가공무원은 국민 세금에서 급료를 받아 일하고 있다”, “국가공무원은 마음에 있는 것을 말하는 개가 되어야 한다”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이어 “결정권은 국민이 뽑은 국민 대표자인 국회의원에게 있다”며 “결정권이 없는 공무원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하자면 공평무사, 객관적 사실관계를 정치가에게 설명해 판단을 구하고 적정(適正)하게 집행하는 것”이라고 했다.
자민당 정책을 총괄하는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정무조사회장은 10일 NHK방송에 출연해 야노 차관 지적에 대해 “기초적인 재정수지에 집착해 정말로 곤란한 분들을 돕지 않는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소리는 없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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