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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한 일자리 창출 비결은 ‘노사 윈윈’” [차 한잔 나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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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1-10-11 06:00:00 수정 : 2021-10-10 23: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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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형 일자리연구원 박병규 이사장

노동 불평등·차별 겪어온 소년공
노조 이끌며 노사상생 가치 체득

대기업 떠나 광주형 일자리 설계
노동계 참여·기업 투자 유치 결실

“GGM 자동차공장 가치 ‘상호공존’
노동 양극화 해소 촉매제役 기대”

그의 별명은 ‘광주형 일자리’다. 지금이야 광주형 일자리가 노사상생의 대명사가 됐지만, 7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낯선 단어였다. 광주형 일자리의 최초 설계자는 박병규(57·사진) 광주형 일자리연구원 이사장이다.

 

지난 8일 만난 박 이사장은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로 양극화와 불평등을 꼽았다. 그는 “최근 양산체제에 들어간 광주형 일자리의 광주글로벌모터스(GGM) 자동차공장이 공정한 일자리의 표본”이라며 “일자리의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GGM 자동차공장의 가치는 기업과 노동 이익의 상호 공존이다. 박 이사장은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노동조건을 만들고, 노동자들이 동의할 수 있는 기업 운영과 이윤이 맞아떨어질 때 공정한 일자리가 생긴다”고 설명했다.

 

GGM 자동차공장은 노사상생을 기반으로 한 광주형 일자리 핵심모델이다. 이 같은 박 이사장의 광주형 일자리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2014년 3월 민주당 광주시장 후보 윤장현씨를 만나면서다. 박 이사장은 당시 윤 후보로부터 광주의 미래 먹거리가 될 만한 아이디어를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박 이사장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가 노사상생으로 되살아난 독일의 자동차 도시 슈투트가르트의 모델을 광주형으로 만들어 보자고 제안했다”며 “당시 윤 후보와 함께 독일 현장을 다니면서 노사상생의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회상했다.

 

윤 후보가 광주시장에 당선되면서 광주형 일자리는 민선 6기 최대 역점사업이 됐다. 박 이사장의 인생도 달라졌다. 그는 25년간 다니던 기아차광주공장을 떠나 광주형 일자리사업을 관장하는 광주시 사회통합추진단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사민정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기구를 구성하고 1년6개월간의 토론과 연구를 거쳐 광주형 일자리의 네 가지 뼈대를 완성했다. 적정임금과 적정노동시간, 원하청 상생, 노사책임경영 등 4대 의제가 그것이다. 여기엔 박 원장의 노동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 이사장은 ‘소년 노동자’ 출신이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방황 끝에 서울 구로공단에 취업했다. 부품 공장 등에서 일하면서 10대 소년 노동자는 노동의 불평등과 차별을 수없이 겪었다. 어느 날 공장 숙소에서 동료가 건네준 책 한 권이 박 이사장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그는 “그날 전태일 열사의 평전을 읽고 그동안 고민했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았다”고 했다. 전태일을 만난 그는 공단에서 노조활동에 참가하는 등 노동운동가로 변신했다.

 

박 이사장은 좀 더 안정적인 직장에서 노조활동을 하고 싶어 1989년 기아차광주공장 직업훈련원의 훈련생으로 입사했다.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10대 소년 때 겪은 노동의 불평등은 여전했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똑같은 일을 하는데, 월급과 복지 모든 면에서 차별이 컸다”고 안타까워했다.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은 박 이사장은 노조위원장을 세 번이나 했다. 그는 “위원장을 맡아 구조조정과 임금체불 등으로 사측과 숱한 갈등을 겪었다”며 “하지만 노사가 어떤 계기로 신뢰가 쌓이자 상호협조하면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광주형 일자리의 가장 큰 난제는 노동계 참여와 현대자동차의 투자 유치였다. 박 이사장은 2018년 광주형 일자리의 양 축인 기업과 노동계의 참여와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해 광주시 경제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노동계는 ‘반값 임금’에 문제를 제기하고 기업은 노조의 경영참여 등을 이유로 노사민정 협의체는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며 “무엇보다 노동계를 바라보는 행정과 기업의 부정적인 시각이 가장 큰 문제였다”고 진단했다.

 

박 이사장은 노사상생 프로그램을 광주시에 제안하면서 출구를 찾았다. 그는 “광주시에는 상생일자리 재단 설립과 GGM에 상생위원회 구성을 제안했고, 다행히 모두 수용되면서 노사 양측에 참여의 명분을 줬다”고 했다. 민선 7기에도 박 이사장은 노동계와 현대차가 삐걱거릴 때마다 ‘구원투수’로 활약해 2019년 1월 마침내 현대차의 투자협약을 이끌어냈다. 광주형 일자리 설계자가 설계를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다.

 

박 이사장이 광주형 일자리 모델인 GGM에 거는 기대는 크다. 사회적 대화의 첫 결실인 GGM이 성공해야 제2, 3의 광주형 일자리의 창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GGM의 경쟁력은 노사의 참여와 협력으로 이윤이 지속되는 일자리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달려 있다고 그는 조언했다. 박 이사장은 “기업은 자전거와 같아서 과감한 혁신을 멈추게 되면 넘어진다”며 “경영진이 기존 기업들의 오너 행세를 따라하거나 노조가 분배에만 몰두하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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